어떻게 말하면 듣는 이가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한겨레 입력 2023. 12. 2. 18:05 수정 2023. 12. 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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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희수의 3분이면 할 말 다함
배려하는 말하기
게티이미지뱅크

“여러분은 왜 아나운서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세요?”

외부 강연을 나갈 때마다 제가 하는 질문입니다. 대답은 다양합니다. “원래부터 말을 잘했으니까” “아는 게 많으니까”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을 테니까” “듣는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까” “잘 경청하고 그 내용을 잘 파악해 질문을 하므로” 등등.

일부만 알아듣는 말은 금물

오랜 경험 끝에 제가 알아낸, 아나운서가 말을 잘하는 이유는 “상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제일 처음 들은 지침은 ‘말할 때 가능하면 쉽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훈련받았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문장은 길지 않아야 합니다. 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상대가 청각에 의존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 것이므로, 내용이 장황해서는 안 됩니다. 한 문장에 많은 내용을 담아 수식어와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 말하는 것보다는 가급적 기본으로 구성된 짧은 문장으로 여러 번 나눠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둘째, 외국어나 전문적인 용어 사용은 가능하면 피합니다. 들었을 때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나 학술용어, 경기용어, 경제용어 등은 알기 쉽게 대체해야 합니다. 대체할 수 없는 경우라면 풀어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셋째, 신조어나 줄임말은 가급적 쓰지 않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은 이제 무슨 뜻인지 다들 아시죠? 저도 방송과 일상에서 간혹 쓰기는 합니다만,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이 용어를 쓰면서도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라며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브금’은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불금의 오타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배경음악인 ‘BGM’(비지엠)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읽은 것이더군요. 이렇게 일부 세대·계층에서 쓰이는 줄임말 같은 경우에는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부득이하게 써야 할 때는 “요즘 ‘브금’이라는 표현도 일부 세대에서 즐겨 쓰이는데요. 이 말은 배경음악을 뜻하는 백그라운드뮤직의 약자인 비지엠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읽은 경우입니다” 이렇게 풀어서 설명하는 과정을 꼭 동반해야 합니다.

넷째, 수 표현을 써야 할 때는 개략적으로 말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매달 30만원씩, 3년간, 5% 복리, 일반과세로 적금에 가입을 하면, 만기 때는 얼마를 수령할 수 있는지 가정해보겠습니다. 원금은 1080만원에 세후 이자는 73만9778원, 합치면 1153만9778원이 됩니다. 이럴 때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려주겠다는 일념으로 ‘천백오십삼만 구천칠백칠십팔원’을 받게 될 거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약 천백육십만원’ 혹은 ‘천백오십만원 조금 넘게’ 수령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듣는 이에게는 훨씬 더 편안하게 들릴 것입니다. 듣는 이가 정말 궁금해한다면 그때 가서 정확하게 금액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말에 장음과 단음이 있는 거 아시죠? 수 표현에서도 장단음이 구별됩니다. 2, 4, 5, ‘만’(萬)은 장음입니다. 원금 ‘11,539,778원’을 장단음 원칙을 지켜서 읽게 되면 ‘천백오:십삼만:구천칠백칠십팔원’이 됩니다. 이렇게 읽으면 리듬감이 생겨나서 긴 숫자를 읽을 때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지루함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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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에게 키오스크 설명하기

요즘 우리 주변에 무인 주문 단말기인 키오스크가 많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기계에 주문을 해야 한다니, 시니어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풀기 어려운 숙제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산업화·민주화·정보화 시대를 모두 거친 자신만만한 시니어들도 왠지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작아지기 마련인데요, 그분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분은 어떻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설명하시겠어요? 일단 키오스크의 정확한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관청·병원·박물관 따위의 공중 장소에 설치하는 무인 정보 단말기. 불특정 다수가 터치 패널 따위의 맨 머신 인터페이스를 통하여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거나, 여러 가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맨 머신 인터페이스’ 등의 어려운 용어가 있기는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터치’입니다. 디지털 세대에게 화면 터치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오랜 세월 손가락에 힘을 줘 실제 단추(버튼)를 눌러서 작동시키는 데 익숙한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생경한 일입니다. 화면에서 원하는 걸 골라서 터치를 하면 된다고 하고, 나는 분명히 터치를 한다고 했는데, 화면은 넘어가지 않고 요지부동인 상태로 있으면 일단 본인도 답답하지만, 뒤에 서 있는 사람의 따가운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르신 본인은 터치한다고 하시는데, 주위 사람이 봤을 때는 여전히 꾹 누르고 계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시지 말고, 가볍게 터치를 하시라고 아무리 알려드려도 오랜 세월 누적된 생활방식이 몇 번의 설명으로 단박에 바뀔 수는 없습니다. 그저 답답하기만 한 어르신께 알기 쉽게 알려드리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어르신 터치를 한다고 하시는데, 다음으로 잘 안 넘어가죠? 어르신 카톡 쓰시잖아요? 처음 카톡 쓰셨을 때 생각나세요? 그때도 자꾸 꾹꾹 눌러서 카톡 쓰는 데 애먹으셨잖아요? 이제는 카톡 너무 잘 쓰시죠? 이 키오스크도 카톡 쓰시듯이 톡톡 건드려보세요. 그럼 기가 막히게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게 될 거예요. 화면에 나오는 것 중 원하는 것만 터치하시면 주문이 되는 겁니다. 맞아요. 그렇게 하시면 돼요. 이제 카드로 결제하시면 됩니다.(끼릭끼릭, 영수증 나오는 소리) 이:만:사:천오:백원 나왔습니다.”

말이 좀 많아지기는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길어졌네요.(문장이 많지만, 각각의 문장은 짧습니다.) 다시 보니 의문문이 많네요. 의문문으로 어조를 높이면 상대의 호응과 이해를 끌어내는 것도 더 수월하겠죠.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정보를 전하는 데 능합니다. 나아가 듣는 사람이 내가 전하는 정보를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국방송 아나운서

 

 

어릴 때는 목소리가 큰 아이였습니다. 청소년기부터는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년인 지금은 스며드는 목소리이고 싶습니다. 현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말하기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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