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 철회 나선 식품업계…'순리와 관치 사이'
정부의 특별물가안정체계 가동 영향
일시 조치에 불과…근본 대책 마련해야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올릴까 말까
이번 주 식품업계는 정신없는 한주를 보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가격 인상을 결정했는데, 판매처에 공문을 보내자마자 취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한두 곳이 그랬다면 해프닝이지만, 알 만한 기업들이 줄줄이 비슷한 일을 겪으니 '사건'이 됩니다.
국내 최대 식품 기업 중 하나인 오뚜기의 사례를 볼까요. 오뚜기는 지난달 27일 오전 3분카레와 3분짜장, 크림스프 등 대표 제품 24종의 편의점 가격을 약 12% 올리기로 하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가격 인상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오뚜기뿐만이 아닙니다. 풀무원은 그래놀라 등 일부 제품 가격을 올릴 계획이었지만 오뚜기가 가격 인상을 철회한 다음날 마찬가지로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롯데웰푸드의 경우엔 한 술 더 떠서, CU에서의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하는 것은 물론, 이미 가격을 올린 GS25에서도 이전 가격으로 '인하'했습니다.
요즘같이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는 시기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가격을 내린다면야 소비자로서는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보면 기업들의 인상 철회 결정이 그렇게까지 자발적인 것만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일까요.
특별물가안정체계
지난달 초,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범부처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매주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품목 별로 물가관리 담당관을 배정하고, 물가안정현장대응팀을 신설해 치솟는 생활 물가를 잡겠다는 겁니다.
특히 생활물가 안정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14개 농축산물(배추·사과·달걀·쌀 등), 5개 외식(햄버거·피자·치킨 등), 9개 가공식품(우유·빵·라면·아이스크림 등) 등 28개 품목은 가격을 매일 확인합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기재부를 중심으로 교육부, 행정안전부 등 10개 부처가 참여해 각 부처 차관들이 직접 기업 임원들을 불러모아 가격 인상 자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한훈 농식품부 차관이 2차례에 걸쳐 간담회를 열고 "전사적인 원가절감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자체 흡수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이번 주의 '가격인상 취소' 릴레이 역시 정부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기업도 큰 마음을 먹고 가격 인상을 결정했을 텐데 몇 시간만에 이를 물린다는 건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거라는 분석입니다.
"정부 역할"VS"관치"
이같은 상황에 대해 생활 물가 안정은 정부의 역할인 만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과 기업의 활동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관치'라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전자는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을 되찾고 있음에도 기업들이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이미 지난 3분기에 식품업계는 호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말에서 올해 초 가격 인상 효과에 원재료 가격 인하가 곁들여지며 영업이익이 급증했죠. 원가가 안정되면 기업이 알아서 가격을 내릴 거라고 믿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후자 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압박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치솟은 원자재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지 기업들을 하나하나 불러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일각에선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물가를 치솟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단기적으로는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 있지만 임계점을 넘기면 기업들이 더 큰 폭으로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물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정부의 과감한 선택이 물가 안정을 불러올까요, 아니면 내년 기업들의 반란을 겪으며 정부의 물가 통제 실패 사례를 하나 더하게 될까요. 2024년 식품업계의 핵심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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