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자동차” 만들었던 모험가, 누가 그를 죽였나

한겨레 입력 2023. 12. 2. 11:05 수정 2023. 12. 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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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프레스턴 터커
터커 모터스를 설립해 1948년 혁신적 자동차를 선보였던 프레스턴 터커. 위키피디아

나는 자가용이 없다. 사십 중반이 넘었는데 아직 운전을 할 줄 모른다. 면허는 1995년에 땄으나 장롱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운전을 하고 싶었다. 십여년 전 동생이 타던 에스엠(SM)5를 받았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출시됐던 1세대 에스엠5였다. 닛산의 명품 엔진 브이큐(VQ)를 장착한 걸작이었다. 만들어진 지 30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도로에 굴러다니는 바로 그 모델이다. 하여간 차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나는 차를 잘 모르는 남자다. 차를 잘 모르는 남자들이 차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건 엔진도 아니고 승차감도 아니고 스피드도 아니다. 디자인이다. 에스엠5 디자인은 뭐랄까, 무난했다. 무던했다.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은 아니었다.

단 51대만 생산된 아름다운 차

차를 받았으니 연수를 받고 운전을 해야 하는데 차는 차고에 계속 처박혀 있었다. 회사가 집과 지나치게 가까운 것도 운전 연습에 도움이 되질 않았다. 삼성의 걸작 에스엠5는 겨울 차고에서 외롭게 웅크리다 몇번이나 배터리가 ‘나가기’까지 하는 수모를 겪은 뒤 누군가에게 팔려나갔다. “운전도 안 할 거면서 차는 왜 가져갔냐”는 동생의 짜증에 나는 말했다. “예쁘지가 않아.”

사실 갖고 싶은 차는 따로 있었다. ‘포르셰 911’이다. 나는 첫 에세이집 서문에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로 포르쉐를 사겠다”고 썼다. 인세로 포르셰를 살 정도가 되려면 절판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반세기 정도가 걸릴 것이다. 포르셰 911을 좋아하는 이유도 디자인이다. 1963년 모델에서 디자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운전도 할 줄 모르면서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클래식 자동차 사진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데, 그 시절 자동차의 모습이 인류 디자인의 어떤 정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자동차는 벤츠고 베엠베(BMW)고 도요타고 현대고 다 비슷비슷하다. 각 제조사 중형 세단을 로고 없이 줄 세워놓으면 구분하기도 힘들 것이다.

포르셰 911이 궁극의 드림카인 것은 아니다. 그 차는 어쨌든 대출이라도 끌어서 살 수라도 있다. 궁극의 ‘카푸어’가 되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드림카가 무슨 의미인가. 꿈만 꾸는 차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내 드림카 역시 구입이 정말로 불가능한 차다. ‘터커 48’이다. 지금은 사라진 자동차 제조사 ‘터커 모터스’가 1948년에 생산한 이 아름다운 차는 단 51대만 생산됐다. 10여년 전 외국 경매에서 거의 200만달러에 낙찰된 적이 있다. 지금 한화로는 26억원 정도다. 이 칼럼을 두번째 책으로 낸다면 서문에 “책이 많이 팔리면 인세로 녹색 터커 48을 사겠다”고 선언할 것이다. 보이스 비 앰비셔스(Boys, be ambitious). 젊은이는 야망을 가져야 한다. 아, 나는 젊은이가 더는 아니구나.

2021년 12월 미국 조지아주 자동차 박물관에 전시된 터커 48. EPA 연합뉴스

자동차를 좀 아는 독자도 지금 약간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터커 모터스라니. 그런 자동차 회사가 있었던가? 만약 당신이 영화광이라면 ‘대부’의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1988년에 연출한 제프 브리지스 주연의 ‘터커’라는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터커 모터스라는 자동차 회사가 있었다. 터커 48이라는 놀라운 자동차를 생산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대체 왜? 그러니까 이건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다. 오로지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꿈 하나로 회사를 창업했다가 거대 기업들의 음모로 쓰러져 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반자동 변속기에 방향 트는 전조등

터커 모터스를 설립한 프레스턴 터커는 1903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동차에 미친 남자였다. 11살 나이에 운전을 배운 그는 이미 십대 후반 시절 자동차를 개조해서 다시 팔 정도로 자동차라는 기계를 좋아했다. 성인이 된 그는 포드에 입사해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일했고, 이후에는 자동차 영업에도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기회는 2차 대전이 터지자 다가왔다. 전쟁은 군수산업의 발전과 확장을 이끌게 마련이다. 터커는 친구와 함께 ‘터커 항공’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전쟁이 제공해준 기회를 움켜잡았다. 전쟁이 끝나자 터커는 군수산업으로 일군 기술력과 자본으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빅 3이라고 불리던 포드·지엠(GM)·크라이슬러가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은 새로운 자동차를 원했다. 자동차광 터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992년 개봉한 영화 ‘터커’의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터커는 1946년 ‘터커 모터스’를 설립했다. 그는 빅 3이 양산하던 지루한 자동차와는 뭔가 다른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터커 항공’을 일군 동료들과 함께 미래의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구와 실패 끝에 그는 마침내 꿈꾸던 터커 48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냈다. 문제는 돈이었다. 아무리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어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없으면 양산형 모델을 내놓을 수 없다. 터커는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과는 다른, 가히 스타트업다운 방식으로 돈을 마련했다. 신문 광고로 채권을 발매해 자동차 구입 대금을 소비자들로부터 미리 받는 방식으로 1200만달러라는 거금을 모았다. 자동차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자동차를 판 것이다. 꿈을 꾸는 사나이가 꿈을 판 것이다.

1948년 터커 48의 양산형이 마침내 시장에 나왔다. 난리가 났다.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낯설던 반자동 변속기와 디스크 브레이크가 달려 있었다. 안전을 위한 안전벨트도 장착됐다. 놀랍게도 1940년대에는 자동차 안전벨트 장착이 의무가 아니었다. 커브를 돌 때 함께 방향을 트는 헤드램프도 처음으로 장착됐다. 연비도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 시절 자동차들은 대개 시속 130㎞에 도달하는 데 1분여가 걸렸다. 터커 48은 15초에 주파했다. 언론도 대중도 환호했다. 미래의 자동차라는 상찬이 쏟아졌다. 대당 가격도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2450달러였다. 터커는 터커 48을 매년 1천대씩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의 역사가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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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짓누르는 대기업, 미래 해치는 것”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모두가 터커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출을 약속했던 은행들은 갑자기 대출을 거절했다. “자동차 역사를 20년 앞당겼다”고 칭찬하던 언론들은 갑자기 터커 48을 흠잡기 시작했다. 재정 상황이 나빠지자 터커모터스는 더는 차를 생산할 수 없었다.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터커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는 그를 기소해 버렸다. 애초에 차를 생산할 생각도 없이 돈을 받아치웠다는 누명이었다. 1950년 열린 재판에서 터커는 징역 115년을 선고받았다. 터커는 이어진 법정 싸움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데 성공했다. 그는 배심원들 앞에서 독점적 자본주의가 소규모 창업자들에게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를 증언하며 말했다. “대기업이 개인의 아이디어와 자유를 짓누르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해치는 행위입니다.”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터커 모터스의 미래는 거기서 끝났다. 오로지 프레스턴 터커라는 천재 한명에게 기대던 작은 회사는 오랜 법정 공방과 재정적 위기를 벗을 수가 없었다. 터커는 1956년 겨우 53살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누가 터커 모터스를 파괴했을까. 누가 터커를 죽였을까. 그건 빅 3이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지엠·포드·크라이슬러는 터커의 성공을 바라지 않았다. 전쟁 이후에도 시장을 독과점하려던 그들에게 갑자기 튀어나와 꿈의 자동차를 만들어버린 터커는 없애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은행, 언론과 정치인들을 포섭해 터커를 몰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오랫동안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나 전해지다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터커’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영화는 왓챠, 웨이브, 네이버 시리즈온으로 볼 수 있다.

내 페이스북에는 오늘도 많은 프레스턴 터커들이 매일매일 글을 올린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다. 나는 그들의 꿈을 존경한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나는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거대한 기업을 일군 뒤 골목시장까지 장악하며 결국 그들이 대항하던 대기업과 똑같은, 혹은 더욱 징글징글한 존재가 되어가는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매일 신문으로 본다. “악마가 되지 말자”(Don’t be evil)는 창업 정신으로 시작된 회사는 악마가 되어간다. 51대가 생산된 터커 48은 47대만이 세상에 남았다. 나의 드림카는 독점적 대기업에 대항한 모험가의 실패한 꿈의 상징으로 컬렉터들의 차고에서 빛나고 있다.

문화 평론가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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