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가지만 내 것이 아냐”…엄빠들의 연차 사용법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3. 12. 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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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에게 주어진 휴가의 대부분을 해외 여행에 썼다. 비행기 값이 비싸고 호텔 예약이 힘든 성수기는 최대한 피해 열심히 여행을 다녔던 것 같다.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 2년간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휴가를 맞춰 1년에 2~3차례 해외 여행을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면서 우리 부부의 휴가는 더 이상 ‘여가’에 맞춰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당연히도 연차를 소진해야하는 가장 1순위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방학기간이다. 여름과 겨울 ‘초 극 성수기’에 있는 방학에는 아이들이 기관에 가지 못하니, 휴가를 써야 한다. 이때는 부부가 최대한 휴가 일정을 맞춰 가족이 모두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다.

나머지 연차는 돌발 상황을 위해 최대한 ‘아낀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 기관에 갈 수 없거나, 기관에서 행사가 있어 부모가 참석하는 일정이 생기면 부부 중 연차 소진이 가능한 사람이 연차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돌발 상황이라 언제, 얼마나 자주 발생할 지 알 수 없기에 휴가는 최대한 쪼개 쓴다. 우리 부부의 경우 반일 정도만 시간을 내면 될 때는 상대적으로 반차를 쓰기 쉬운 남편이 휴가를 내는 편이다. 나의 경우 매일 마감이 있는 업무 특성상 갑자기 반차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육아 뿐 아니라 업무 중에도 돌발상황은 발생한다. 나의 경우는 회사에서 단기 프로젝트 팀에 소속되어 일을 할 때 프로젝트 기간이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 졸업·유치원 입학이 겹쳤다. 졸업 후 유치원 입학까지 발생한 짧은 봄방학과 유치원 입학 후 일주일간의 유치원 적응기간이 문제였다. 맞벌이 부부로 다섯시까지 수업이 있는 유치원 종일반에 등록할 수 있었지만, 적응기간에는 점심시간 전에 아이를 받아야했다. 다행히 이 시기는 남편의 희생으로 메울 수 있었다. 둘째는 계속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남편이 휴가와 재택근무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했다. 유치원 적응 기간은 자체적으로 절반으로 줄였다. 유치원 종일반의 일부 워킹맘들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돼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워킹맘 동지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공백들은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시는 시터 선생님께 근무 시간 연장을 요청해 해결했다.

사실 워킹맘·워킹대디가 가장 두려워 하는 상황은 갑자기 ‘아이가 아플때’다. 출산을 준비하는 예비 엄마 아빠들, 육아 휴직 후 일터로 돌아와야 하는 엄마 아빠들이 항상 하는 걱정도 이것이다.

“등하원 시터를 쓸 수는 있지요.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는 방법이 없잖아요.”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는 상황에서 워킹맘·대디에게는 등하원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기관에 보내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 경우 전일제 시터가 상주하시는 것과 달리 갑자기 아이가 기관에 가지 못하는 돌발상황에 대한 대응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굳이 순위를 매겨본 적은 없지만,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어떻게 하냐는 질문은 세 볼 필요도 없이 가장 내가 많이 들은 질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속 시원한 답을 해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하고 걱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11월의 지금도 다음날 아침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새벽에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깨 아이의 이마를 만져보고, 몸이 불덩이 같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응급실로 향하면서 ‘아이가 괜찮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지’하는 고민을 했던 엄마는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때마다 대응 방식도 다르다. 남편이 휴가를 낼 때도 있고 시댁과 친정에 도움을 부탁한 적도 있다.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와 함께 오래 아이를 돌봐주신 시터 선생님이 일정을 바꿔가며 도와주신 적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당일 시터나 보육교사를 단기 채용 하는 엄마들도 종종 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조언이지만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가장 많이 적용되는 곳이 육아 현장 인 것 같다. ‘이 시스템이 언제 무너질까, 그렇게 되면 나는 회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일주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아직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하루가, 일주일이, 1년이 살아지고 아이들은 조금씩 더 자라나고 있다. 사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은 이제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위한 주문이기도 하다. 최근 워킹맘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사립초등학교 추첨에 모두 예비 번호도 받지 못한 채 ‘광탈’ 했지만, 당장 3월부터 12시에 아이의 수업이 끝나겠지만, 시터 선생님은 늦은 오후부터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지만, 나는 육아 휴직도 쓸 수 없지만, 방학도 아주 길겠지만...

어떻게든 나는 또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갈 궁리를 할 것이고 이 시간을 무사히 보내게 될 것이다. 아주 멋지게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1년을 잘 보내고, 워킹맘의 ‘꿀팁’을 주변에 전수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잘 버텨내서 이 칼럼을 통해서도 더 많은 이들에게 나의 경험을 공유해 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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