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수조 원 손실 우려되는 홍콩 ELS…금융 재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안상우 기자 2023. 12. 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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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쉽] DLF?라임 사태와 홍콩 ELS발 악몽, 비극은 되풀이되나


연일 '홍콩 ELS'에서 내년 상반기에 수조 원대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ELS(Equity-Linked Securities)는 특정 종목이나 주가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고, 이 기초자산의 추이에 따라 수익률이 연계되는 증권입니다. 때문에 홍콩 ELS란 홍콩 주가 지수와 연계된 증권을 뜻합니다.

ELS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경한 이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17년만 해도 대한민국 부자들이 재테크를 위해 가장 투자하고 싶어 하던 금융상품이었습니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 2017) 미국과 홍콩 등에서 1980년대부터 시작됐던 ELS는 우리나라엔 지난 2003년 처음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 20년 동안 ELS는 650조 원 넘게 발행되며 대표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금융투자협회)

결국, '홍콩 ELS 수조 원 손실' 뉴스의 골자는 투자 좀 해보려 했던 개인들이 조 단위 손실 위험에 처했단 이야깁니다. 아니, 어떤 상품이기에 이렇게 큰 손실이 나는 걸까요? 그런 상품에는 도대체 누가 돈을 투자하는 걸까요? 그리고 큰 손실이 날 수도 있음에도 왜 계약에 나선 것일까요? 이 뉴스가 궁금했던 모두를 위해 묻고 답하며 한 걸음씩 들어가 보려 합니다.
 

"홍콩 ELS, 수조 원대 손실"


이 기사는 어제 나온 것도, 지난주에 보도된 것도 아닙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6년 2월 15일(월) 머니투데이 신문 1면에 나온 기사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불과 몇 년 전에도 홍콩 지수가 급락하며 홍콩 ELS 투자자들이 수조 원대 손실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ELS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 기사를 소개한 건 ELS 상품이 고위험 파생상품이란 점을 가장 먼저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ELS는 우량한 종목(테슬라, 삼성전자 등)의 주가나 홍콩H지수(HSCEI)*, S&P500 지수, EUROSTOXX50 지수 등 해외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이 기초자산 움직임에 따라 손익이 결정됩니다.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홍콩 ELS'는 이 가운데 홍콩H지수를 포함한 해외 지수 3개 정도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입니다.

*홍콩H지수(HSCEI) : 중국본토기업이 발행했지만 홍콩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고 있는 주식(H-Shares) 중 시가총액, 거래량 등의 기준에 의해 분류한 40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


상품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상 홍콩 ELS 상품의 만기는 3년입니다. 즉, 3년 뒤 만기 시점에 홍콩H지수를 포함해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중 하나라도 판매자와 투자자가 사전에 서로 합의한 수준 밑으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원금에 더해 수익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이때, 지수가 폭등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만기 시점에 지수가 폭락을 거듭하며 사전에 합의한 수준을 밑돌고 있다면, 하락한 만큼 원금도 손실을 입습니다. 주가 상승보다는 하락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품인 것입니다.

3년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습니다. ELS 상품은 6개월마다 조기 상환 기회를 갖습니다. 이때도 방식은 똑같습니다. 조기 상환 시점에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들이 판매자와 투자자가 사전에 합의한 수준을 밑돌지 않으면 '원금+수익'이 보장됩니다. 단기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기에 만기를 채웠을 때보다는 수익은 줄어듭니다.


판매자와 투자자가 사전에 합의한 기준보다 지수가 높다면 원금과 수익을 보장받기 때문에, 이 기준을 '배리어'라고 부릅니다. 통상 6개월과 1년 뒤 조기 상환 시점에는 배리어가 90% 수준입니다. 즉, ELS 계약 시점보다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중 어느 하나도 90%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이 시점에 원금과 수익을 조기 상환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배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낮아집니다. 계약 이후 1년 6개월 또는 2년이 되는 시점에는 80%까지 내려가고, 2년 6개월이 되는 시점에는 70%, 3년 만기를 다 채운 시점에는 55%까지 떨어집니다.(배리어는 상품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내가 ELS에 투자한 시점에 경기 침체가 발생해 기초자산 지수들이 계약 당시의 60%까지 하락했더라도 지수들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3년 만기를 채우면 투자 원금과 약정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ELS 상품에 배리어를 하나 더 추가한 것이 바로 'Knock-in'형 ELS 상품(이하 '녹인형 ELS')입니다. 이 상품에는 기존 배리어 밑에 녹인(Knock-in) 구간(통상, 계약당시 지수의 50% 수준)이 존재합니다.

1번 사례처럼 만기까지 한 번도 배리어를 넘지 못하더라도 녹인 구간에 진입하지 않았다면 원금과 약정한 수익을 모두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녹인형 ELS 상품의 특징인데, 투자자에게 항상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가 한 번이라도 계약 당시보다 50%를 밑돌아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면 원금과 수익을 받기 위해서는 2번 사례처럼 반드시 배리어를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ELS는 2016년에도, 지금도 투자자들을 수조 원대 손실 위험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녹인형이든 아니든 ELS는 막연한 확률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야바위 게임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야바위는 뒤집었을 때 나오는 카드 숫자가 중요하다면, ELS는 내가 어떤 지수를 선택했고, 그 지수가 얼마나 하락할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야바위 게임에 어쩌다 투자자들이 내몰렸을까요?
 

"한 번도 손실난 적 없습니다"

홍콩 ELS 상품을 설계하고 발행하는 주체는 증권사라면, 은행은 이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는 창구 역할을 합니다. 때문에, 홍콩 ELS 상품 열에 아홉은 은행에서 계약됐습니다. 지금까지 취재과정에서 만난 상품 계약자들은 수익률이 그나마 괜찮은 예금이나 적금 상품을 알아보려 은행을 방문했다가 ELS 상품을 권유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때마다 이들이 은행 직원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지금까지 손실난 적 없어요."였습니다. 그래서 예금이나 적금 정도로 생각하고 가입한 투자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야바위 같은 ELS 상품을 두고 '손실난 적 없는 금융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난 2015년 홍콩H지수는 14,801까지 치솟았지만 불과 6~8개월 만에 49%나 급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앞서 살펴본 신문 기사처럼 무려 10조 원에 달하는 투자 손실이 발생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지수는 다시 1만 선을 회복하며 수 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 위험을 넘겼습니다.(물론, 이 사이에 만기가 도래해 손실을 본 투자자들도 있습니다.)


그 이후, 2017년부터 2020년 말까지 홍콩H지수는 40% 이상 급락하거나 급등하는 일 없이 횡보기를 갖습니다. 그 결과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 상품의 경우 손실 위험이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덕분에 홍콩 ELS 상품은 이제 손실난 적 없는 안전한, 그러면서도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금융 상품으로 둔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기간 매년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대규모 손실 위험을 겪었던 2016년에는 발행금액이 5조 원에 불과했지만, 2017년에는 3배 정도 늘어 16조 원 넘게 발행됐고, 2018년에는 또 3배 늘어 50조 원 가까이 발행됐습니다. 2019년에도 상승세가 이어지며 50조 원이 넘게 홍콩 ELS 상품이 발행됐습니다. 코로나 락다운 위기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던 2020년에도 홍콩 ELS 상품은 무려 19조 원 넘게 발행됐습니다.

ELS의 민낯이 드러나다

안전한 금융 상품처럼 행세하던 홍콩 ELS의 실체는 지난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코로나 위기 대응과정에서 중국은 철저한 방역과 봉쇄를 선택했고, 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이전 지출을 늘린 것과 달리 중국은 돈을 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동맹국을 총동원한 '디리스킹'* 전략을 앞세워 중국을 전방위 압박했습니다. 그 결과 엔데믹 이후에도 중국 기업들은 힘을 쓰지 못했고 홍콩H지수는 폭락했습니다.

*참고 기사 보기
- 미국과 중국 사이 어딘가에...'디커플링'보다 더 무시무시한 '디리스킹' (뉴스쉽)
[ https://premium.sbs.co.kr/article/Eq7uJCsvGIJ ]
- 싸우자는 건가 말자는 건가, 중국 '디리스킹' 말하는 미국의 속내는? (뉴스쉽)
[ https://premium.sbs.co.kr/article/myk6DyVbiu7 ]


폭락한 홍콩H지수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년 상반기까지 이대로 유지된다면 2021년 상반기에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 상품은 손실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60%까지 폭락한 탓에 녹인형 홍콩 ELS 상품 대부분은 녹인 구간에 진입했습니다. 이는 녹인형 ELS 상품의 경우 다른 상품들보다 배리어가 더 높게 형성돼 있어 원금과 수익을 보장받기가 더 어려워졌음을 뜻합니다.

실제로,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 ELS(총 9조 5,873억 원) 가운데 무려 5조 6,809억 원이 녹인 구간에 진입했습니다. 이 가운데 82.5%에 달하는 4조 6,867억 원이 은행에서 계약됐고, 나머지 9,942억 원은 증권사를 통해 판매가 됐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녹인 구간에 진입한 홍콩 ELS 잔액 대부분이 KB국민은행에 몰려 있다는 점입니다. KB국민은행이 판매한 홍콩 ELS 상품 중 이미 녹인 구간에 진입한 잔액은 4조 6,434억 원입니다.(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상품 기준) 은행권 판매 잔액의 99%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녹인형 홍콩 ELS 상품만 따져본 금액이란 사실입니다. 녹인형이 아닌 ELS 상품은 배리어가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돼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홍콩H지수가 회복되지 못하고 유지된다면 마찬가지로 원금 손실 위험이 큽니다. 즉, KB국민은행에서 집중적으로 판매한 녹인형 ELS 상품 말고도 다른 은행에서 판매한 ELS 상품들에서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점 대비 50%에 불과한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내년 상반기 4.6조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걸로 추정됩니다. (5대 은행 기준, 은행연합회)

엔데믹 이후 중국 기업들의 실적 부진은 홍콩H지수 폭락으로 이어졌고, 초고위험 상품으로서 ELS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은 수조 원대 투자 손실 위험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요? 다음 질문은 '어쩌다 은행권에서 이렇게 많은 ELS 상품을 판매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왜 판매량이 특정 은행에 집중됐는가?'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상우 기자 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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