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건설붐' 그들 태운 비행기는…슬픔·희망·향수, 인생이었다[금준혁의 온에어]
권동운 학예연구사 "젊은 세대에 '우리 부모님은 이런 시대를 보냈다' 들려주고 싶었다"
[편집자주] 하루에도 수십만명이 오가는 공항, 하루하루가 생방송입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비행기와 승객입니다. 이 수많은 '설렘'들을 무사히 실어나르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항공사와 공항의 온갖 조연들이 움직입니다. 이들에게서 듣는 하늘 이야기, '온에어'입니다.
(서울=뉴스1) 금준혁 기자 = "요즘 친구들은 중동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 이렇게 들을 기회도 없어요. 전시를 매개로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에 대해 한번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기획전 '중동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들'의 마무리를 앞둔 지난달 22일 국립항공박물관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권동운 학예연구사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며 전시장을 둘러봤다. 지난 9월19일 개최된 기획전은 3일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파독땐 비행기도 제대로 없었는데…중동엔 '하늘의 여왕'이 떴다"
지금은 150대 이상의 비행기를 보유한 대한항공(003490)을 포함해 10곳의 국적사가 전 세계를 누비고 있지만 초기에는 대한항공조차 장거리에 띄울 비행기가 부족했다. 권 학예사는 "1960년대 해외로 파견가던 광부와 간호사들의 사진을 보면 비행기에 일본항공이 써 있는데 국제선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나 독일의 항공사에서 임차해야 했다"고 말했다.
1973년 발생한 석유파동은 기름을 쓰는 항공업계에 위기였지만 동시에 기회였다. 대한항공은 1974년 8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겨울철 사무실 실내 온도를 17도로 낮춘다는 기사가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중동에서 사회간접자본을 짓기 시작하며 한국인 건설 근로자들이 대거 진출하는 '중동붐'이 시작하게 됐다.
중동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 바레인이 1976년 첫 정기노선으로 개설됐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도 연이어 취항에 성공한다. 1974년 395명에 불과했던 중동 진출 근로자수는 하늘길이 열리며 1979년에는 11만1848명으로 급증한다.
여기에 '하늘의 여왕'이자 점보기로 불리는 B747이 대한항공에 도입되며 중동 진출은 더욱 가속화했다. 권 학예사는 "270명 이상을 실을 수 있는 B747의 도입은 대한항공으로서도 큰 성과였다"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모빌처럼 걸어서 전시하는 장난감, 책상에 두는 오브제, 홍보자료 등도 나왔다"고 말했다.
◇50년전 비행기에 있던 승무원…"중동행 비행기, 우울함 맴돌아"
하지만 중동행 비행기에 올랐던 사람들에게 비행기는 지금처럼 익숙하거나 여행의 설렘이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가족을 떠나 생소한 비행기를 타고 이름도 몰랐던 열사의 땅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권 학예사는 "중동에 가시는 분들은 오고 갈 때 감정 동요가 심했다고 한다"며 "승무원도 어떻게 보면 이들과 남이지만 어려운 땅으로 떠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으로 여겼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여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수고하시게 될 건설 현장 요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성원과 격려를 보냅니다. 임무를 무사히 마치시고 귀국하는 그날까지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실제로 50년 전 중동을 향하던 대한항공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이러한 기내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했던 배정미씨는 "중동 노선에 탑승하는 분은 거의 건설 노동에 종사하시는 분들이었고 출국할 때는 굉장히 우울해했다"고 회상했다.
대한항공 기내에서는 고향의 향수를 달래라는 의미에서 '우리가요 모음'이라는 카세트테이프를 무상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가수 현숙이 부른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라는 노래의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 옆에 놓고 철이 공부 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라는 가사에서도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1984년 33세의 나이로 이라크 바그다드에 파견됐던 김창해씨는 "한번은 귀국하기 위해서 바그다드 공항에 가니까 대한항공 스튜어디스가 걸어 나오는데 진짜 눈물이 나왔다"며 "태극마크를 봤을 때 사람들이 막 울었다"고 기억했다.
◇"처음 시도한 중동붐의 항공문화적 해석…비행기는 시대 관통했다"
이처럼 격동의 시기였던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비행기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 녹아 있었다.
권 학예사는 "중동 진출을 경제학, 사회학적으로 해석한 예는 있는데 항공문화적으로 해석한 예가 없기 때문에 관련 자료를 저희가 직접 찾았다"며 "처음에는 이 내용들을 관통하는 뭔가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합치고 보니 항공이 문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항공의 역사뿐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 항공박물관의 설립 취지 중 하나다. 그래서 일반적인 박물관과 달리 역사학과 출신의 학예사뿐만 아니라 항공업에 종사했거나 꿈꿨던 학예사가 함께 전시를 만든다. 이같은 목표를 안고 항공박물관은 20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인비행학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김포공항에 들어섰다.
더 나아가 항공은 근현대만의 산물은 아니라는 것이 박물관의 시각이다. 권 학예사는 "어릴 때 날렸던 비행기부터 새나 연 같은 것도 큰 틀에서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연결돼 있다"며 "이러한 부분까지 전시를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rma1921kr@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14세 여중생 성폭행·촬영한 교장…"걔가 날 받아들였다"
- 조진웅, 尹 탄핵 촉구 집회 VCR 등장 "국민으로서 엄중한 사태 예의 주시"
- "완전 미쳤어" "대표님 언제?"…조국혁신당 '그날 밤' 단톡방 폭발
- '윤 멘토' 신평 "대통령 선한 품성…헌재서 살아 오면 훌륭한 지도자 될 것"
- 한강서 놀다 유흥업소 끌려가 강간당한 여중생…"5년 뒤 출소, 무서워요"
- 유튜버 엄은향, 임영웅 '뭐요' 패러디했다가…"고소 협박 당해"
- 62세 서정희, 6세 연하 남친과 애틋 "절망 끝에 만난 기쁨" [N샷]
- 곧 스물 예승이…'류승룡 딸' 갈소원, 몰라보게 달라진 분위기
- "가족 모두 한복 입고 축하해주는 꿈"…다음날 2억 복권 당첨
- 장예원 "전현무와 1시간 반씩 전화통화…말투 다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