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무덤’ 수원 공략하는 LH 저승사자 [금배지 원정대]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2023. 12. 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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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원정대-7]
국힘 영입인재 김현준 前 국세청장
‘경기도 정치 1번지’ 수원갑 도전장
“청장 물 덜 빠졌네” 냉대 속 민생투어
“뽑을만한 사람 왔다”며 ‘샤이보수’ 관심
수성고 후배 민주 김승원과 진검승부 예고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입당 환영식에서 이날 입당한 김현준 전 국세청장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국민의힘 홈페이지]
Q. 김현준에게 금배지란? 나는 국민의 공복이다. 나는 국민의 머슴이다. 항상 국민을 섬겨라.
Q. 김현준에게 정치란?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고,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

“시장에 인사 다니다 보면 ‘아직 국세청장 물이 덜 빠졌네’라는 반응이 많아요. 좀 더 고개를 숙이라는 거죠.”

최근 만난 김현준 전 국세청장은 억울하다는 듯 토로했지만, 사실 기자도 속으로 ‘별로 달라진 게 없네’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8년 겨울. 당시 그는 서울지방국세청장이었다. 서울 서대문 족발집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맞은 편에 있던 김 전 청장이 기자에게 명함을 한 손으로 툭 던지듯 줬다. ‘역시 국세청 사람은 다르네’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김 전 청장 말고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다시 만난 김 전 청장은 “엊그제 나온 총선용”이라며 5년 전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명함을 줬다. 툭 던지듯 주는 게 아무런 악의없는 그냥 버릇이었다.

문제는 고쳐지지 않는 버릇과 뻣뻣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그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나섰다는 점이다. 그것도 국민의힘 후보로, 그것도 무려 경기도 ‘수원갑’에서 말이다.

수원갑서 밀리면 화성·오산까지 영향
4년 전엔 20%P 차이로 참패 경험
수원에는 5개의 선거구(갑·을·병·정·무)가 있고, 모두 더불어민주당 지역구다. 2016년 제20대 총선과 2020년 제21대 총선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5개 선거구를 싹쓸이했다. 명실상부 민주당 텃밭인 셈이다.

그나마 을과 병에서는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있으나, 갑에서는 3연패 중이다. 지난 총선 때는 무려 20%포인트 차이로 졌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험지도 아니고 그냥 ‘낙선지옥’이다.

수원갑은 ‘경기도 정치 1번지’라 불릴 만큼 상징성을 갖는 지역이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도시가 수원이고,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 수원갑이다. 수원갑을 포기하면 남은 4개 수원 지역구는 물론이고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는 화성 3곳과 오산까지 모두 9개 의석을 통째로 내줄 수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화성에서 지역구가 하나 더 추가되면서 ‘0:9’는 ‘0:10’까지 벌어질 위기에 처했다. 의미 부여를 더 한다면 수도권 민심의 진짜 바로미터가 바로 수원갑이다.

안 그래도 수도권에서 참패할 거라는 위기론이 가득한 와중에, 이 중요하디 중요한 선거에서 새로운 선수로 국민의힘에 영입된 인물이 바로 김현준 전 국세청장이다. 그런데 왜? 대체 왜?

수원 수성고 출신 ‘인센티브’에
국세청장·LH사장 경력이 경쟁력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다. 첫 번째는 김현준 전 청장이 수원 수성고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현역인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수원시장을 내리 3선한 염태영 전 시장(현 경기도 경제부지사·더불어민주당)도 수성고 출신이다. 경기 오산의 안민석 민주당 의원도 동문이다. 보수 진영에선 평택이 지역구였던 원유철 전 의원이 수성고를 나왔다. 정부 인사 중에는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있다.

이처럼 수원 수성고 출신이란 점만으로도 김 전 청장은 적지 않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에서 동문 선후배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찍을만한 보수 후보가 없어서 조용히 있던 이른바 ‘샤이 보수’가 하나둘 모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준 전 국세청장(수원미래연구원장) 프로필 사진. <수원미래연구원 제공>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이색 경력 때문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과 행정고시 합격, 그리고 국세청에 들어와 엘리트 코스를 밟은 끝에 국세청장. 잘나가는 공무원이었던 그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온 건 국세청장 퇴임 후였다.

2021년 4월 문재인 정부 당시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으로 온 국민의 질타를 받았고, 4개월 넘게 사장도 없이 흔들리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에 김현준 청장이 파격 임명된 것이다. 국세청을 떠난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는 16개월간 내부 통제 강화와 조직 혁신을 단행했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대형 공공기관장 중 가장 먼저 자리를 내려놨다.

수원 경제 모세혈관까지 파악
한국지리에 밝은게 ‘숨은 재능’
김장·청소 체험하며 더 현장속으로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왼쪽)하고, 수원 수성고 앞에서 수능 치는 후배들을 응원 중인 김현준 전 국세청장(수원미래연구원장). <수원미래연구원 제공>
‘본인의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김 전 청장은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해결할 실물경제 전문가”, “북수원(장안구) 발전을 이끌 준비된 인물”, “서민·중소기업 지원과 재정건전성 확보의 적임자” 등과 같은 다소 지루한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북수원(장안구)에 가장 필요한 건 김 전 청장과 같은 경제·행정 전문가일지 모른다. 게다가 국세청장이란 자리는 착실하기만 한 사람이 앉는 자리가 아니다. 기획·조사·정무 능력을 두루 갖추지 않고서는 역임할 수 없는 게 국세청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그에게 ‘LH 사태 해결사’ 역할을 맡아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숨은 재능’도 있다. 김 전 청장은 스스로를 ‘아마추어 한국 지리 전문가’라 칭했다. 그는 “세무서장(과장급)으로 근무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사무실에 지도를 걸어놓고 수시로 들여다 본다”며 “전문가를 제외하곤 아마 나만큼 한국 지리에 밝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또 “수원 경제의 모세혈관은 물론이고 지리까지 꿰뚫고 있기 때문에, 지역을 살리기 위한 맞춤형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수원의 교통망 구축, 도심 복합 개발 그리고 서울 출퇴근 문제 해결 등을 앞세워 10여 년간 숨죽이고 있던 보수 민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김현준 전 청장에게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샤프한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거냐, 아니면 대중적인 이미지로 변신을 꾀할 거냐’고 물었다.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그는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답을 찾은 것 같다. 최근 그는 미용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사랑의 김장 담그기를 했고, 사랑의 반찬 나누기도 했고, 수능 수험생 예비 소집일 날 모교인 수성고 앞에서 후배들을 응원했다.

그의 이미지 변신 시도가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뻣뻣하고 차가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금배지 원정대’는 내년 4월 총선에 출마를 준비 중인 정치인을 소개하고, 해당 지역구를 분석해보는 매일경제신문 정치부의 기획 연재물입니다. ‘절대 반지’를 찾아 떠난 반지 원정대처럼, 현역 의원은 물론 정치 신인까지 집중 추적해 유권자 여러분의 선택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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