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무덤’ 수원 공략하는 LH 저승사자 [금배지 원정대]
국힘 영입인재 김현준 前 국세청장
‘경기도 정치 1번지’ 수원갑 도전장
“청장 물 덜 빠졌네” 냉대 속 민생투어
“뽑을만한 사람 왔다”며 ‘샤이보수’ 관심
수성고 후배 민주 김승원과 진검승부 예고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시장에 인사 다니다 보면 ‘아직 국세청장 물이 덜 빠졌네’라는 반응이 많아요. 좀 더 고개를 숙이라는 거죠.”
최근 만난 김현준 전 국세청장은 억울하다는 듯 토로했지만, 사실 기자도 속으로 ‘별로 달라진 게 없네’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8년 겨울. 당시 그는 서울지방국세청장이었다. 서울 서대문 족발집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맞은 편에 있던 김 전 청장이 기자에게 명함을 한 손으로 툭 던지듯 줬다. ‘역시 국세청 사람은 다르네’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김 전 청장 말고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다시 만난 김 전 청장은 “엊그제 나온 총선용”이라며 5년 전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명함을 줬다. 툭 던지듯 주는 게 아무런 악의없는 그냥 버릇이었다.
문제는 고쳐지지 않는 버릇과 뻣뻣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그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나섰다는 점이다. 그것도 국민의힘 후보로, 그것도 무려 경기도 ‘수원갑’에서 말이다.
4년 전엔 20%P 차이로 참패 경험
그나마 을과 병에서는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있으나, 갑에서는 3연패 중이다. 지난 총선 때는 무려 20%포인트 차이로 졌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험지도 아니고 그냥 ‘낙선지옥’이다.
수원갑은 ‘경기도 정치 1번지’라 불릴 만큼 상징성을 갖는 지역이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도시가 수원이고,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 수원갑이다. 수원갑을 포기하면 남은 4개 수원 지역구는 물론이고 같은 생활권으로 묶이는 화성 3곳과 오산까지 모두 9개 의석을 통째로 내줄 수 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화성에서 지역구가 하나 더 추가되면서 ‘0:9’는 ‘0:10’까지 벌어질 위기에 처했다. 의미 부여를 더 한다면 수도권 민심의 진짜 바로미터가 바로 수원갑이다.
안 그래도 수도권에서 참패할 거라는 위기론이 가득한 와중에, 이 중요하디 중요한 선거에서 새로운 선수로 국민의힘에 영입된 인물이 바로 김현준 전 국세청장이다. 그런데 왜? 대체 왜?
국세청장·LH사장 경력이 경쟁력
이처럼 수원 수성고 출신이란 점만으로도 김 전 청장은 적지 않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에서 동문 선후배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찍을만한 보수 후보가 없어서 조용히 있던 이른바 ‘샤이 보수’가 하나둘 모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1년 4월 문재인 정부 당시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으로 온 국민의 질타를 받았고, 4개월 넘게 사장도 없이 흔들리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에 김현준 청장이 파격 임명된 것이다. 국세청을 떠난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는 16개월간 내부 통제 강화와 조직 혁신을 단행했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대형 공공기관장 중 가장 먼저 자리를 내려놨다.
한국지리에 밝은게 ‘숨은 재능’
김장·청소 체험하며 더 현장속으로
하지만 어쩌면 지금 북수원(장안구)에 가장 필요한 건 김 전 청장과 같은 경제·행정 전문가일지 모른다. 게다가 국세청장이란 자리는 착실하기만 한 사람이 앉는 자리가 아니다. 기획·조사·정무 능력을 두루 갖추지 않고서는 역임할 수 없는 게 국세청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그에게 ‘LH 사태 해결사’ 역할을 맡아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숨은 재능’도 있다. 김 전 청장은 스스로를 ‘아마추어 한국 지리 전문가’라 칭했다. 그는 “세무서장(과장급)으로 근무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사무실에 지도를 걸어놓고 수시로 들여다 본다”며 “전문가를 제외하곤 아마 나만큼 한국 지리에 밝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또 “수원 경제의 모세혈관은 물론이고 지리까지 꿰뚫고 있기 때문에, 지역을 살리기 위한 맞춤형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수원의 교통망 구축, 도심 복합 개발 그리고 서울 출퇴근 문제 해결 등을 앞세워 10여 년간 숨죽이고 있던 보수 민심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김현준 전 청장에게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샤프한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거냐, 아니면 대중적인 이미지로 변신을 꾀할 거냐’고 물었다. 몇 주 전 까지만 해도 그는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답을 찾은 것 같다. 최근 그는 미용 봉사활동에 참여했고, 사랑의 김장 담그기를 했고, 사랑의 반찬 나누기도 했고, 수능 수험생 예비 소집일 날 모교인 수성고 앞에서 후배들을 응원했다.
그의 이미지 변신 시도가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그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뻣뻣하고 차가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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