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엑스포에 들인 노력 헛되지 않으려면
119대 29.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듣던 판세와는 너무 다른 결과라서다. 불리하지만 2차 투표까지 끌고 간다면 역전극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게 그동안 만난 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이었다. 2030 엑스포 유치전 얘기다.
한국의 부산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의 2030년 엑스포 개최지 결정투표에서 29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개최지는 119표를 얻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결정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저의 부족의 소치”라며 대국민 담화를 했다. 국민에게 기대를 안겼다가 실망감을 준 것에 대한 사과다. 90여 개국 500여명을 만나 한국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하고 다닌 그의 실망이 가장 컸을지도 모른다.
정부와 재계 관계자들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 509일 동안 지구를 495바퀴 돌며 3472명을 만났다고 한다. 투표 당일 기자와 연락한 한 재계 관계자는 25일째 출장 중이었다. 큰 비용과 많은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만큼 아쉬워하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먼저 정부의 오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분명히 찾아내 책임을 묻고 국정 운영에 참고해야 한다. 유치전을 시작할 당시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에 크게 뒤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유치 확률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중간에도 초반의 판세는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현실적으로 유치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중간에 퇴로를 열어야 했는데 정부의 행동은 반대였던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국정을 뒤로하고 마지막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헛된 노력을 했다.
대통령은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로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는 문제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주변에서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고 심기만 경호했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다른 중요한 일에서 문제가 반복될 수 있어서다.
대통령실에서 엑스포 유치를 총괄한 관계자가 투표를 한 달쯤 남긴 시점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이 엑스포 유치전의 판도를 바꿨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후에도 그는 승부가 ‘박빙’이라는 표현을 썼고, “사우디가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른말을 못 하는 대통령실 분위기에서 비롯된 문제라면 소통 문화를 점검해야 하고, 참모 개인의 문제라면 주변 인물들을 돌아봐야 한다. 대통령은 특히 이번 유치전을 진행하는 동안 귀에 달콤한 말을 쏟아낸 사람들을 다시 보길 바란다.
외교라인의 점검도 필요하다. 투표국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119대 29라는 성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외교라인 입장에서는 ‘참사’다. 적어도 외교라인은 정확한 보고를 했어야 했다. 정보력이 이렇게 후진 외교라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 고쳐야 한다. 경제가 어느 때보다도 외교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기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 유치전을 통해 얻은 것을 극대화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관계를 맺지 않던 많은 나라를 찾아 안면을 텄다.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엑스포 유치를 위해 돌아다니면서 여러 국가에서 사업 기회를 엿볼 수 있었다. 헛돈만 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는 이들과 약속한 것들을 충실히 지키면서 중장기적인 우군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엑스포에서 졌다고 약속을 저버리면 안 된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는 데는 전 세계의 지원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새로 만들 사업 기회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엑스포 유치에 들인 비용을 최대한 회수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원인을 분석하고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간다면 이번 엑스포 유치 도전은 정말 돈만 쓰고 남은 게 없는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국민은 이번 엑스포 유치전을 보며 정부에 많은 실망을 했다. 두 번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
[이재원 경제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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