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테니스의 재미 다 모았네, ‘피클볼’ 빠진 4050
美서 열풍 종목, 국내서도 인기몰이
지난 10월 말 서울 중구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테니스장. 가로·세로 30m 규모 테니스장을 작게 쪼개서 네트를 설치한 다음 사람들이 작은 라켓으로 공을 주고받으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었다. 언뜻 테니스 비슷하지만 코트가 좁고(가로 6.1m 세로 13.4m) 라켓이 작았다. 라켓은 탁구채 2배 정도 크기. 네트 높이는 86~91㎝. 테니스 91~107㎝와 거의 비슷하다. 큰 땅바닥에서 하는 탁구, 또는 스쿼시를 실외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스포츠는 피클볼(Pickleball). 미국에서 4000만명이 열광하는 그 생활체육 종목이 한국에서도 서서히 인기를 몰고 있다.
이날 이곳에선 대한피클볼협회 주관 ‘제1회 피클볼 서울 오픈’ 경기가 열렸다. 테니스 코트 2개는 피클볼 코트 6개로 변신했다. 오후 4시쯤 경기장엔 70여 명이 모여 경기를 끝냈거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 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고 온 학생부터 백발 어른까지, 참가자 연령은 다양했다. 40~50대 중년층이 특히 많았다. 남녀 성비는 비슷했다. 대회는 나흘 동안 열렸고 참가자 기량과 연령 등에 따라 단식·복식 등을 섞어 15개 세부 종목으로 진행됐다. 경기장을 찾은 이가 매일 400~500명에 달했다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피클볼 서울 오픈 여자 복식 부문에 참가한 박초윤(56·경기 고양시)씨는 2020년 공원을 걷다가 이 생소한 라켓 스포츠를 목격했다. ‘어, 나도 할 수 있겠네’라는 생각이 들어 동호회를 찾아 가입하고 그때부터 피클볼에 빠졌다. 코트는 딱 배트민턴 경기장 크기. 상대적으로 작고 2명이 라켓과 공만 있으면 간단하게 할 수 있다. 박씨는 코로나 시기 집합 인원 제한 탓에 스포츠 활동을 하기 쉽지 않았는데 피클볼은 2명이 간편하게 즐길 수 있어 이를 탈출구처럼 활용했다. 박씨와 복식 짝을 이룬 기홍선(49·경기 고양시)씨는 3년 전 캐나다에서 살던 시절, 테니스장에서 사람들이 피클볼을 치는 걸 보고 관심이 생겼다. 귀국한 뒤 한국에서 집 근처 동호회에 등록한 뒤 열심히 뛰었다. 지금은 주 3~4일, 하루 2~3시간씩 피클볼을 즐긴다. 그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복식 조를 꾸려 훈련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기씨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며 “어디서든 네트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피클볼이 점점 퍼지고 있다. 싱가포르인 토니 고(55)씨는 가족 일정으로 한국 방문 계획을 세웠다가, 한국에 있는 기간 마침 서울 오픈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해 대회에 나섰다. 그 역시 코로나 기간 중 피클볼을 많이 쳤다고 한다. “원래 축구를 좋아했는데 코로나 기간 공을 차지 못하게 되니 어떤 운동을 할지 고민하다 피클볼 권유를 받았다”며 “지금은 거의 매일 2시간 이상 한다”고 했다.
대한피클볼협회에 따르면 협회가 창립된 2018년 등록 클럽과 동호인 수는 3개, 100여 명이었다. 2020년 15개 680여 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60개 2800여 명. 5년 동안 약 20배 이상 커졌다. 정식 협회에 등록한 인원 규모일 뿐 개인적으로 피클볼을 즐기는 사람들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피클볼은 활동량이 적지 않으면서도 격렬하지 않고 배우기가 비교적 쉬운 게 장점이다. 먼저 11점을 올리는 팀이 승리한다. 10-10 동률이면 듀스 제도를 적용한다. 대부분 규칙은 테니스랑 비슷하다. 다만 네트 앞에선 발리를 금지한다. 장애인들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생긴 지 60년이 채 되지 않은 스포츠지만 코로나 시기 본격적으로 열풍이 불면서 “미국인의 14%가 최근 1년 새 한 번 이상 피클볼을 해봤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올해 초 나올 정도고 그 인기가 급등했다. 미국에선 2년 전 메이저리그 피클볼(MLP)이란 프로 경기도 출범했다. NBA(미 프로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39·LA 레이커스)와 케빈 듀랜트(35·피닉스 선스)가 프로 피클볼 구단을 사들이기도 했다.
☞피클볼(pickleball)
1965년 미국 사업가·정치인 조엘 프리처드 등이 아이들과 재미를 위해 배드민턴장에서 눈에 띄는 탁구채를 집어 구멍 난 플라스틱 공을 쳐보면서 시작했다. 네트 높이를 서서히 낮추면서 형식이 잡혔다.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15점 1게임, 11점 3게임 2선승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노를 젓는 보트 경주에서 뒤처진 팀을 이르는 단어 ‘피클 보트’에서 이름을 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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