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찾았는데 일 못 찾겠다” 탈북민 취업 박람회 가보니

김민서 기자 2023. 12. 2.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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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탈북민 취업 박람회
2023년 12월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북한이탈주민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지호 기자

“예전에 회사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들이 군대는 왜 안 갔다 왔냐고 해서 탈북민이라고 대답하자마자 ‘나중에 연락 드리겠다’고 하더군요. ‘입구 컷’을 당한 거죠.”

1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9년 만에 열린 ‘탈북민 일자리 박람회’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탈북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탈북민들은 최근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탈북민 실업률은 6.1%로 일반 국민(3.0%)보다 두 배 정도 높다. 취업이 어려운 건 모든 청년들에게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은 ‘탈북’ 꼬리표라는 또 하나의 벽을 넘어야 한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탈북민들은 편견과 함께 영어 등 자격증, 인맥 세 가지를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취업 장벽’으로 꼽았다. “탈북보다 취업이 더 힘들다” “자유는 찾았는데 직장은 못 찾았다”는 한숨도 들을 수 있었다.

어디 좋은 일자리 없나요 -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북한이탈주민 일자리 박람회’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탈북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9년 만에 열린 이번 박람회에는 141개 기업과 기관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했다. /김지호 기자

통일부가 주최하고 한국무역협회, 남북하나재단이 주관한 이날 박람회엔 141개 기업과 기관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했다. 박람회장에 마련된 87개 부스는 채용 상담을 받아보려는 탈북민들로 북적였다. 탈북민들은 박람회장 입구 게시판에 붙은 기업들의 구인 정보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거나 메모했다.

현장에서 만난 탈북민들은 북한 말투를 쓰는 것부터가 위축되는 일이라고 했다. 2017년 남한에 온 취업 준비생 김모(34)씨는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자격증과 토익은 기본인 것 같은데 저처럼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된 탈북민 대부분은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이 없다”고 했다. 정원관리사에 관심이 생겼다는 김씨는 “한 회사에 면접 보러 갔을 때 북한 말씨가 표 날까 봐 위축돼서 괜히 대답을 잘 못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학교와 취업 시장에서 밀려나고, 어색한 북한 말투 때문에 보이지 않는 차별에도 시달린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국내에 별다른 ‘인맥’이 없다는 점도 탈북민들에겐 구직 활동의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충남 공주의 탈북 대학생 정모(24)씨는 “한국에 가족이나 친척이 없기 때문에 정보력에서 큰 차이를 느낀다”며 “요즘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해도 인맥이 필요한데 주변을 보면 친구나 부모님 지인 소개로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2006년 남한에 온 정씨는 북한 엄마와 중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에 능통하다. 그는 “중국어와 무역을 전공했고 박람회장에서 해외 영업 부문 구인 업체를 돌아봤다”고 했다.

충북 옥천에서 올라온 직장인 조모(27)씨는 지역 면사무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2009년 남한에 온 조씨는 “사무직을 하고 싶어서 한전 부스 다녀왔는데 자격증과 토익 점수가 필요하다고 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조씨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다 허리디스크로 그만두고 계약직 공무원이 되는 길을 택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200명의 탈북민이 조씨처럼 공공기관에 재직 중이다.

2023년 12월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북한이탈주민일자리박람회에서 한 구직지가 상담을 받고 있다. /김지호 기자

탈북민들은 취업 시장에서 여전히 몇 겹의 차별을 느낀다고 했다. 인천에서 온 직장인 엄모(여·48)씨는 “아무래도 아직 탈북민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며 “저처럼 회사 다니고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 적응 기간이 단축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엄씨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하면 남성만 원하는 곳이 많다”며 “여성도 힘쓰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취업 시장에서 탈북 여성은 이중 차별을 받는다”고 했다. 경기 부천에서 온 박모(57)씨는 “남한에 와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는데 남한 사람들 중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많으니 같은 자격증이 있어도 탈북민은 취업할 때 후순위로 밀려난다”며 “잘할 수 있다고 문을 두드려도 받아주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하고 싶어 하는 탈북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안내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누적 탈북민은 3만4021명이다. 남북하나재단이 진행한 ‘2022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21.9%가 남한 적응을 위해 가장 필요한 국가의 지원으로 취업과 창업을 꼽았다. 탈북민 월평균 임금은 238만4000원으로 일반 국민보다 약 50만원가량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근속 개월은 일반 국민 72개월의 절반 수준인 35.3개월이다.

이날 박람회엔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 교육생, 하나재단 구직 등록자 등 13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이날 개회사에서 “무엇보다 이번 행사가 탈북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건전한 사회 문화 조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갖은 고난을 겪고 자유와 인권을 찾아 우리 사회에 오신 탈북민은 남다른 도전 정신과 삶의 에너지가 충만한 인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자리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헌한다는 소속감을 갖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과 함께 통일 준비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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