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이른바 ‘응징 언론’의 몰카 함정 취재

박정훈 논설실장 2023. 12. 2.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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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임을 주장하지만
언론이 아닌
’유사 언론’에도
언론 자유를 준다면
조폭에게 흉기를
쥐여주는 것과 같다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가 2022년 6월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에서 김건희 여사 구속 촉구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그는 '응징 취재'라는 이름으로 우파 인사들을 찾아 난동 부려 수차례 유죄 선고를 받았다. 2020년에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응징 취재하겠다며 황소를 타고 가다가 떨어져 골절상을 입었다. /뉴스1

논란을 부른 ‘김건희 여사 몰카’ 보도의 논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김 여사의 처신과 관련된 문제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대통령 부인이 검증되지 않은 속칭 ‘듣보잡’ 인물과 연락을 취하고, 사적 공간에서 만나 명품을 건네받았다는 사실 자체만로도 쇼킹하다. 그동안 김 여사에게 쏟아진 공격은 가짜와 음해성이 많았지만, 김 여사 자신이 부적절한 언행으로 구설수를 자초한 것도 적지 않다. 김 여사의 동선(動線)이 대통령실의 공적 통제를 벗어나 있을 위험성도 이번에 드러났다.

시중엔 대통령 주변 누구도 김 여사 문제를 직언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보도가 나온 뒤 5일이 넘도록 대통령실이 아무 입장을 내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란 추측이 나온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 리스크를 정밀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권은 크게 타격 입을 수 있다. 몰카 보도에 대해 가타부타 입장부터 내야 마땅하다.

더 큰 쟁점은 ‘함정 취재’ 논란이다. 언론임을 주장하는 매체가 불법적 방식으로 취재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는 것이다. 몰카 촬영은 재미 목사가 했지만 뒤에서 이를 세팅한 것은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매체 기자가 초소형 카메라와 명품 가방·화장품을 구입했고, 목사가 이것을 들고 김 여사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제보받아 보도한 게 아니라 매체가 목사를 내세워 함정을 파고 몰카를 기획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더 구조적이고 위험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김건희 리스크’는 한 정권이 성공하느냐 망하느냐의 문제지만, 유사 언론의 폭주는 우리가 어렵게 구축한 민주주의 룰을 깨트리는 국가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동의 없이 남을 촬영하거나 녹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법이다. 언론재단 윤리 강령도 ‘기자는 도청, 비밀 촬영 등으로 사생활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5항). 다만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만 예외다. 비위생 음식점이나 마약 현장 잠입 취재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해당 식당이 불결하다는 정보가 있거나 특정 업소에서 마약이 거래된다는 제보를 확보하는 등 공익적 요건이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존재해야 한다. 기자가 아무 식당, 아무 가게나 들어가 몰카를 찍어댄다면 견딜 곳이 없을 것이다.

기자는 뉴스의 당사자가 아니다. 제3자 입장에서 현상을 기록하는 관찰자이지 사건에 끼어들어 사실을 창조해 내는 것은 언론의 영역이 아니다. 이번 논란에서 ‘서울의소리’는 기획자이자 설계자 역할을 했다. 관찰 수준을 넘어 카메라와 선물을 준비하고 몰카 드라마를 연출했다 ‘서울의소리’는 김 여사의 ‘인사 청탁’ 혐의가 있어 함정 취재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이 매체의 몰카 영상엔 인사 청탁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인사 청탁을 취재하겠다면서 명품을 미끼로 다른 함정을 팠다. 함정 아니면 없었을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매체를 ‘언론’으로 볼 수 있느냐부터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서울의소리’는 스스로를 ‘응징 언론’이라고 지칭한다. 그릇된 것을 응징하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언론은 벌 주는 존재가 아니다. 마음대로 선악을 가르고 자의적으로 선별한 악에 징벌을 가한다면 그것은 깡패 집단일 뿐이다. ‘응징 언론’이란 말 자체가 논리 모순이다. 언론은 관찰하고 전달할 뿐 응징해선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매체는 물리적 응징까지 서슴지 않는다. 백선엽 장군 묘소를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좌표 찍은 우파 교수·역사학자, 의사협회장 등에게 폭언을 퍼붓고 멱살 잡는 행패를 저지르고 동영상을 찍어 보도했다. 폭행·모욕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것도 여러 번이다. 작년 초엔 이 매체 기자가 김건희 여사와 통화한 ‘7시간 녹취록’을 뿌려 대선 판을 흔들어 놓았다. 그때 몰래 녹음한 기자가 이번에도 함정 취재를 세팅했다. 같은 기자가 똑같은 불법적 수법을 반복한 것이다.

이곳뿐 아니다. 편향성으로 악명 높은 또 다른 매체는 윤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 등이 심야 파티를 열었다는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를 보도하고도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한 장관을 미행하고 자택에 침입하는가 하면 핼러윈 희생자 명단을 무단 공개하는 등의 비윤리성으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천안함 음모론에 앞장섰던 다른 매체는 ‘윤석열 검사가 대장동 사건을 무마했다’는 가짜 대화록을 작년 대선 사흘 전에 유포하기도 했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조차 무시하는 ‘유사 언론’의 폭주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이들에게도 똑같이 언론 자유를 인정해준다면 조폭에게 흉기를 쥐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언론임을 주장하지만 언론으로 볼 수 없는 유사 매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분명하게 선을 긋고 그들에게 준 취재의 특권을 거둬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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