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경주 지진, 왜 서울에 알리냐고?
요란한 알람이 새벽잠을 깨웠다. 곤히 자던 아이가 놀라 깨 자지러지게 울었다.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규모 4.0 지진이 발생한 30일 새벽 4시 55분, 기상청은 전국에 긴급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가뜩이나 말초신경 자극하도록 설계된 재난 문자 경보음을 깊은 새벽에 들으니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보통 새벽 5시 무렵부터 ‘얕은 잠’인 램 수면이 활성화하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신경질적 알람에 반응해 눈을 뜨고, 일부는 다시 깊은 잠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기상청 지진화산국엔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많은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주에서 난 지진 문자를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서울 사람한테 보내서 잠도 못 자게 하느냐”는 식의 불만 토로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국민신문고에도 10여 건의 항의 글이 올라왔다. 단잠을 깨운 죄로 기상청 직원들은 고함과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새벽의 울림은 사랑하는 사람의 안전을 확인하는 수단이 됐다. 경주에 홀로 계신 부모님을 둔 자녀, 남편이 경북 소재 회사를 다니는 주말 부부 등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땐 가족이 생사를 확인해 연락이 끊겼을 경우 경찰이나 소방에 신고해 구조 활동을 요청해야 한다. 특히 고령의 부모님이 홀로 거주하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아 재난문자를 받지 못할 땐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재난 문자를 받고 재차 연락을 취해야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경주에서 발생한 큰 지진 소식을 파동이 전혀 닿지 않았던 서울이나 제주 사람에게도 알려야 하는 이유다.
사실 이날 기상청의 대응은 오히려 박수받아야 했다. 지진 발생 2초 만에 관측에 성공했고, 8초 만에 1차 분석을 끝내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지진 대응은 빠를수록 인명·재산 피해를 줄일 수 있기에 많은 국가가 ‘지진 발생 후 10초 이내’에 관측 및 분석, 속보 발송까지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도 ‘10초 벽’을 허문 것은 올해 1월 강화도 지진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기록인 9초보다 이날은 1초 더 앞당긴 것이다. 이날 경북 일대에선 지진으로 인해 사람들이 느끼는 흔들림 정도를 나타내는 ‘계기 진도’가 최대 5를 기록했다. 5는 거의 모든 사람이 흔들림을 느끼고 그릇이나 창문이 깨지는 정도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어서 지진의 위력이 피부에 닿지 않는 것일 뿐 울산·경남·부산을 비롯해 강원·대구·대전·전북·충북에도 진동이 감지된 강력한 지진이었다.
우리나라는 올해 내륙과 해상을 포함해 총 99번 땅이 흔들렸다.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터라 또다시 짙은 밤에 시끄러운 재난 문자가 울릴 수 있다. 그럴 때 잠을 방해받았다고 불평하기보단 누군가에겐 가족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고 이해해보면 어떨까. 아무리 깊은 새벽이라도 재난 문자는 시끄럽게 울려야만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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