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다 품은 광양… 지조의 동백잎은 별빛처럼 빛나고[수토기행]

● 정유재란 최후·최대의 전쟁터
1598년 12월 16일 초겨울 새벽. 전남 광양의 앞바다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 물결과는 달리 조선 판옥선 함대에는 한껏 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목숨을 걸고 하늘에 맹세했다. 이어 일본 함대와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다. 임진·정유 7년전쟁의 최대 규모 결전이 광양만 바다에서 전개됐던 것이다.

순천에서 남해까지 20여 km에 이르는 바다에서 치러진 전쟁을 ‘광양만 해전’이라고도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순천왜성 앞바다에서 일본 군과 전투를 벌인 이후 남해군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사망하기까지 60여 일간 지속적으로 이어진 해상 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협에서 일본 함대와 전투를 벌이는 틈을 타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순천왜성에서 도망할 수 있었던 이 전쟁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우리가 임진·정유 7년전쟁을 ‘이긴 전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광양만에서의 장군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 백두대간 끝에서 부활한 윤동주의 시혼(詩魂)

국문학자 정병욱(1922∼1982)은 대일항쟁기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와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정병욱은 선배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며 맡긴 시집 원고를 자기 집 마루 밑에다 꽁꽁 숨겨 보관했다. 1945년 윤동주가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후, 광복 후인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그의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일제하에서 윤동주 유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정병욱 가족 덕분이다.
백두대간의 북쪽 끝인 북간도 룽징(龍井) 출신인 윤동주의 시혼(詩魂)이 백두대간의 남쪽 끝자락인 망덕산의 정병욱 가옥에서 살아났다는 점이 이채롭다.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버킹엄궁에서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국빈 만찬 중 낭송했던 윤동주의 ‘바람이 불어’ 시비도 새겨져 있다.


● 옥룡사지의 동백숲 산책로
백계산(505m)의 옥룡사지 동백숲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 산책로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동백나무 1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동백나무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89호)다.
동백숲은 통일신라 말 선승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옥룡사의 땅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도선국사에게 따라다니는 ‘비보(裨補)풍수’의 현장인 것이다.
비보풍수는 특정한 땅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나무나 화초류 등을 심고 가꿈으로써 활성화한 땅 기운(지기·地氣)이 사람에게 이로움을 제공하는 환경적 행위를 가리킨다.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가 조선의 평양 땅에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다는 일화도 그런 예다. 기자는 조선의 풍속이 너무 강하고 모진 것을 보고 평양의 백성들에게 버드나무를 심도록 장려했다. 이는 부드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를 심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인심을 순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었다. 평양을 버드나무 유(柳) 자를 써서 ‘류경(柳京)’으로 부르는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동백꽃은 지고한 사랑, 생명의 영속성과 순환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우리나라 지기가 순환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도록 염원하는 차원에서 동백나무를 심었던 것일까.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한 옥룡사에서 35년간 머물다 입적했다고 전한다. 번성했던 사찰은 1878년 화재로 폐허가 됐고 당시 심었다는 동백나무만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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