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주행 안정감은 그랜저, 연비는 크라운이 앞서

2023. 12. 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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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대형 하이브리드 비교 시승기
그랜저와 크라운은 하이브리드인 만큼 배터리 보증도 중요하다. 배터리에 대한 두 제조사의 보장 기간은 10년/20만㎞까지다. [사진 로드테스트]
10만4652대. 현대차 그랜저의 올해 누적 판매 대수다. 7세대로 거듭나며 압도적 1위 자리를 사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엔진과 전기 모터가 함께 들어가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HEV)의 판매 비중이 거의 50%에 달한다. 그랜저가 쌓은 굳건한 벽에 HEV ‘원조’ 가문 출신이 도전장을 던졌다. 토요타 크라운으로, 주행코스별 연비와 정숙성, 승차감과 적재 공간 등 다양한 부문에서 승자를 저울질했다.

그랜저 트렁크, 크라운보다 10L 작아

그랜저
그랜저는 1986년 등장해 40주년을 앞둔 현대차의 장수 모델이자 플래그십 세단이다. 현행 7세대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독립 이후 더 크고 고급스럽게 변했다. 초대 그랜저의 디자인을 계승한 오페라글라스가 좋은 예다. 5035㎜의 차체 길이는 과거 기함이었던 에쿠스와 맞먹는다. 나아가 18㎞/L의 복합연비는 현대차 라인업의 막내, 캐스퍼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그랜저도 크라운과 비교하면 새댁이다. 크라운은 1955년 등장해 약 70년간 16세대에 걸쳐 진화했다. 센추리를 제외한 토요타의 실질적인 플래그십으로, 본래 일본 내수시장에 주력하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번 세대는 더욱 젊고 역동적인 감각과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앞세워 토요타의 글로벌 전략 차종으로 탈바꿈했다. 국내엔 크로스오버 버전이 먼저 들어왔다.

크라운
기함급 차종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적재공간도 중요하게 따진다. 크라운이 소폭 여유롭다. 트렁크 기본 용량은 그랜저가 480L, 크라운이 490L다. 크라운은 2열 시트 폴딩까지 지원한다. 또 트렁크 바닥부터 천장까지 높이가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부피가 큰 짐을 좀 더 수월하게 실을 수 있다. 다만, 전동트렁크 기능이 없는 점은 ‘옥의 티’다.

두 차의 장비 수준은 비슷하다. 계기판과 중앙 모니터 모두 12.3인치다. 국내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1열 통풍 시트와 스마트폰 무선충전 역시 기본으로 갖췄다. 다만, 공간 활용성은 그랜저가 앞선다. 기어레버를 운전대 뒤로 붙이면서 넉넉한 중앙 수납공간을 챙겼다. 크라운은 전자식 기어레버를 갖추되 휴대폰을 수직으로 넣는 충전패드로 구성했다.

두 차 모두 시트의 가죽 질감뿐 아니라 옆구리를 아늑하게 감싸는 맛이 좋다. 크라운은 지상고가 높아 소형 SUV처럼 엉덩이를 가볍게 밀어 넣어 탈 수 있다. 뒷좌석 공간감은 그랜저의 승리다. 다리 공간에 주먹 1개가 더 들어간다. 크라운은 2열 시트의 힙 포인트가 1열보다 높아 개방감이 좋다. 두 차 모두 2열 열선과 송풍구, 2개의 USB-C포트를 갖췄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이번 비교는 크게 ‘풀-투-풀(Full-to-Full)’ 방식의 실연비 비교와 계측기를 활용한 발진가속 및 제동거리 비교 등 세 가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직렬 4기통 1.6L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 배터리를 조합해 230마력을 뿜는다. 정부공인 복합연비는 18인치 휠(시승차) 기준 18㎞/L다. 앞바퀴 굴림(2WD) 모델만 나온다.

크라운 2.5 하이브리드는 직렬 4기통 2.5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과 3개의 전기 모터, 배터리를 조합해 시스템 최고출력 239마력을 낸다. 정부공인 복합연비는 21인치 휠(시승차) 기준 17.2㎞/L. 토요타의 전기식 사륜구동 E-Four(AWD) 단일 모델로 나온다. 계측기로 확인한 0→시속 100㎞ 발진가속 성능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사륜구동과 3개의 전기 모터를 탑재한 크라운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그랜저가 평균 0.53초 더 빨랐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몸무게(그랜저 1700㎏, 크라운 1845㎏), 그리고 토크가 좋은 터보 엔진의 영향이 컸다. 두 차 모두 시승차 기준 너비 225㎜의 타이어로, 그랜저는 넥센 엔페라 슈프림 S, 크라운은 브리지스톤 투란자 제품을 끼운다.

다음은 제동 성능 비교. 두 차 모두 시속 100㎞에서 정지까지 필요한 제동거리를 계측했다. 그랜저는 평균 37.73m, 크라운은 38.76m를 기록했다. 초기 제동은 크라운이 37.9m를 기록하며 그랜저보다 짧았지만, 반복된 급제동 환경에서 페달 감각이 푹신해지는 페이드 현상이 일찍이 찾아왔다. 그랜저는 37~38m를 꾸준히 기록하며 좀 더 안정적인 기록을 냈다. 다만, 145㎏의 공차중량 차이를 감안하면 두 차의 1.06m 차이는 납득할만한 결과다.

크라운, 전동트렁크 기능 없어 ‘옥의 티’

시속 80㎞ 항속 주행 상황에서 두 차의 실내 소음 수준도 비교했다. 그랜저의 승리였다. 2열까지 이중접합 차음유리로 틀어막은 결과, 평균 61~63㏈(데시벨)을 기록했다. 크라운은 64~66㏈로, 풍절음과 바닥 소음은 잘 막았지만 엔진음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졌다. 다만, 캠리나 RAV4 등 같은 구동계를 사용하는 토요타 차종보다 방음 수준은 더 훌륭했다.

다음은 연비 비교다. 우선 인천 계양의 주유소에서 두 차 모두 연료를 가득 채운 다음, 서울 서초동 로드테스트 사무실까지 편도 31㎞ 구간에서 1차 연비계측을 진행했다. 결과는 크라운의 압도적 승리. 평균 22.5㎞/L의 연비를 기록했다. 공인연비보다 한층 높다. 그랜저는 평균 18.5㎞/L로, 공인연비는 웃돌지만 크라운과 3.8㎞/L의 차이를 보였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크라운이 전기 모터 3개를 쓰는 까닭이다. 덕분에 도심 구간에서 전기차(EV) 모드 사용 비중이 그랜저보다 높고, 배터리 회복속도가 빠르다. 그만큼 EV 모드 개입 시간을 늘릴 수 있다. 현대차는 엔진이 주도권을 갖고, 전기 모터가 ‘보조’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연비가 ‘잘 나오는 조건’이 일반 가솔린차와 동일하다.

이번엔 서초동에서 영종도 미단시티까지 중고속 위주 환경에서 2차 계측을 진행했다. 그랜저가 기지개를 폈다. 평균 20.1㎞/L까지 오르며 크라운과 격차를 좁혔다. 토요타 하이브리드는 도심연비가 고속연비보다 잘 나온다. 실제 시속 100㎞ 이상 환경에선 EV 모드가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그랜저도 주행 중 엔진으로 배터리 충전하는 시간이 빨랐다. 구동계 특성 외에 두 차의 주행 질감은 상대적 개성이 뚜렷했다.

그랜저는 고속주행 안정감이 뛰어나다. 3세대 플랫폼으로 갈아타면서 무게중심을 낮춘 결과 속도를 높일수록 차체를 바닥에 진득하게 붙이는 느낌이 좋다. 여기에 랙타입 파워 스티어링(R-MDPS)을 사용하면서 무게감도 좋고, 포장상태가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도 안정적인 거동을 유지했다. 크라운은 좀 더 부드럽다. 렉서스 ES, 토요타 캠리와 비슷하되 높은 지상고와 넉넉한 서스펜션 움직임으로 ‘부들부들’ 기분 좋은 승차감을 완성했다. 운전대 조작에 따른 앞머리 반응도 그랜저보다 예리하다. 편안한 이동과 운전의 손맛까지 놓치고 싶지 않다면 크라운이 취향에 더 맞을 수 있다. 다만, 고속에서 차체를 진득하게 누르는 감각은 그랜저가 우위다.

취재를 마치고 연료를 가득 채운 뒤 실제 연비를 계산했다. 해당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799원이었으며 이날 주행거리는 169㎞였다. 그랜저는 8.776L의 가솔린이 들어갔고 비용은 1만5788원, 최종 연비는 19.21㎞/L를 기록했다. 크라운은 7.546L를 주유해 비용은 1만3575원, 최종 연비는 22.39㎞/L를 달성했다. 크라운의 완벽한 승리였다.

경제성을 체크할 땐 제조사 보증기간도 살펴보면 좋다. 먼저 일반보증(차체 및 일반부품)은 토요타가 3년/10만㎞로 넉넉하고, 엔진 및 동력전달계통 보증은 현대차가 5년/10만㎞로 기간이 더 길다. 두 제조사 모두 하이브리드 구동 배터리 보증은 10년/20만㎞까지 제공한다. 따라서 두 차 모두 10년 동안은 배터리 걱정 없이 운행할 수 있다. 마지막 비교는 가격이다. 그랜저는 세 가지 트림으로 4266만~5161만원이다. 최상위 트림에 모든 옵션을 더하면 5735만원이다. 시승차는 익스클루시브 트림에 현대 스마트센스 옵션을 더한 모델로 4855만원이다. 크라운은 대부분 옵션을 포함한 단일 트림으로 들어온다. 가격은 2.5 하이브리드가 5810만원, 2.4 터보 하이브리드가 6640만 원이다.

로드테스트 김기범 편집장, 강준기 기자 ceo@roadte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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