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선거구 획정 지연[동아시론/조원빈]
유권자 알권리, 입후보자 선거운동권 침해
기득권 현역의원들, 일부러 개편 늦추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당장 선거구별 주민등록인구가 획정 기준인 선거구 간 인구 편차 2 대 1 이내에 맞지 않아 재조정이 필요한 지역구가 30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기존 지역구 중 18곳이 인구수 상한(27만1042명)을 넘어 지역구가 쪼개질 수 있으며, 11곳은 인구수 하한(13만5521명) 미달로 선거구 규모를 늘려야 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지난달 12일 22대 국회의원선거 국외부재자 신고가 시작됐고, 이달 12일부터는 예비후보자등록이 예정돼 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 1년 전까지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법정기한을 지키지 않고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선거구 지각 획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회는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선거일 44일 전,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선거일 42일 전,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선거를 39일 남기고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 역시 여야 간 첨예한 대립 속에 선거구 획정이 상당 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 획정이 더 지체되면 유권자의 알권리와 입후보예정자의 선거운동 기회 등 정치적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여러 정당이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선거가 유권자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지난 선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대표해서 열심히 활동하고 기대하는 성과를 이루었는지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처럼 흔치 않은 기회에 유권자가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들이 있다. 이 중 중요한 정보는 이번 선거에 누가 후보로 나섰는지와 그들이 어떠한 경력을 배경으로 무엇을 공약하고 있는지 등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구에 누가 어떤 공약을 들고 후보로 나서고 있는지 알기 어렵게 되고 정보를 접하는 기간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민주주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유권자의 정치적 기본권이 크게 제한받게 되는 것이다.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피해를 보는 이 중에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 신인들도 있다. 자신이 출마하려는 선거구 범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리 준비하더라도 지역구가 언제든지 합쳐지거나 쪼개질 수 있어 선거 캠페인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신인 정치인들이 갈피를 못 잡고 지역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 획정 지연과 더불어 정치 신인들이 선거에 도전하기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문턱이 있다. 바로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공직선거법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원칙적으로 선거일 120일 전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후에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사실, 유권자를 한 명이라도 더 만나 자신을 알려야 하는 정치 신인들은 예비후보로 등록하기 전까지는 선거사무소를 차리거나 얼굴과 이름이 적힌 선거홍보용 현수막을 게시할 수도 없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적극적 지지를 당부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정치 신인들이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에는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통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문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등에 그친다.
선거법이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해 정치 신인들이 꼼짝하지 못하는 사이, 현직 국회의원은 선거구 획정 전에도 지역구를 넘나들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갖는다. 현직 국회의원은 의정보고회를 개최하거나 보고서, 인터넷,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자신의 임기 4년 내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구가 갑자기 변경되면,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현역 국회의원이 선거에 유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여야 국회의원 모두 선거구 획정에 반드시 필요한 선거제도 개편을 미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참여와 경쟁을 꼽는다.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정치 신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리한 경쟁을 치르고, 유권자는 또 한 번 깜깜이 선거를 마주하게 된다.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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