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 극장사회’ 같은 대한민국
경이로운 성장이어 대중문화 선도
희생과 극단적 방법으로 성과 이뤄
높은 자살률·저출산 등 문제점 노출
한국사회의 본질 꿰뚫는 개념 제시
압축적 근대성의 논리/장경섭/박홍경 옮김/문학사상/2만원
20세기 전반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데 이어 한국전쟁까지 겪으면서 폐허가 됐던 한국 사회는, 1960년대부터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뤘다. 특히 1987년 이후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고, 21세기에는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 문화로 발돋움하기까지 극적인 변화를 거듭해 왔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한국 및 비교사회적 맥락에서 압축적 근대성에 대해 공식화한 설명을 제시한 뒤 한국의 압축적 근대성을 구성하는 핵심적 주제, 본질적 특성들을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압축적 근대성은 시간 및 역사적, 공간 및 문명적 단축과 압축적 혼합이 아우러져 근대화가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압축적 근대성은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가 시간과 공간 차원에서 극히 압축적으로 발생하고, 서로 이질적인 역사 사회적 요소가 역동적으로 공존하며 고도로 복잡하고 유동적인 사회 체계가 (재)구성되는 문명 조건이다.” 사회나 국가 등 사회적 단위뿐만 아니라 개인, 가족, 이차조직, 도시, 세계 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위에서 표현될 수 있다.
저자는 압축적 근대성의 구조적 속성으로 먼저 식민지 근대성과 냉전체제하 자유세계 근대성,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맞물린 세계주의 근대성, 저항적 자유주의 근대성 등 여러 근대성이 중첩되는 ‘멀티플렉스 극장사회’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고 꼽는다.
구체적으로 영국을 비롯해 몇몇 나라가 유럽에서 근대화를 선도했지만, 그 외 대다수 유럽 사회는 소수의 근대화 선두 주자의 침략에 대응하고 그들의 앞선 기술, 경제, 제도, 정치적 노하우를 빠르게 습득해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들 나라에서도 자연스럽게 압축적 근대성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압축적 근대성은 한국이나 동아시아 일부 국가만이 아니라 비유럽의 근대화 후발주자는 물론 유럽의 근대화 후발주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는 취지다.
더구나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서 기업의 탈영토화, 정보화, 국제적 금융화, 지식 국제 거래, 산업의 과학화, 국제적 생태 파괴와 거버넌스, 초국적 인구 재편 등 다양한 경향의 이차 근대성이 압축적으로 진행돼 왔고, 중국을 비롯해 사회주의를 벗어나고 있는 사회 역시 압축적 근대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압축적 근대성은 압축적 성장과 함께 압축적 박탈을 조합으로 한다고 지적한다. 즉, 유례없이 빠른 경제 성장과 산업화를 이뤘지만, 인간의 생활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여러 기본적 조건을 희생하고 남용하여 극단적 방법으로 이룬 성과라는 것이다. 학습 및 노동 시간은 필적하는 대상 국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자살률은 경제 수준이 유사한 다른 사회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으며, 출산율 역시 정치적 격변이 없는 상황임에도 살인적으로 낮아졌다. 압축적 근대성의 결과이자, 포스트 압축근대적 현실인 셈이다.
“한국 사회가 압축적 사회 및 경제 변화의 위험한 시도들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에 한국인들은 개발과 근대화가 성숙 단계에 이른 선진국들이 공통으로 치러야 할 대가들에 직면한 상태이다. 이것이 한국의 포스트 압축근대적 현실이며 가난과 배고픔, 정치적 균열, 사회 갈등과 혼란으로 점철된 식민지 해방 직후의 상황과 비교해도 어려움이 덜해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책은 압축적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한국과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로 확대 적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야심 찬 기획일 뿐만 아니라, ‘멀티플렉스 극장사회’나 ‘사회인프라 가족주의’ 등 한국 사회의 본질과 특성을 꿰뚫는 참신한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박수받아 마땅해 보인다. 다만,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풍부한 실례 제시보다는 난해하고 학술적 개념을 남발하고 같은 개념과 용어를 중언부언하는 듯한 서술과 문장이 저술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책은 이례적으로 한국 출판사가 아닌 영국 폴리티 출판사에서 한국 학자의 원작으론 처음으로 영문으로 출간됐다. 이번에 한국어판 출간에 이어서 아랍어, 프랑스어, 중국어 번역판도 곧 출간될 예정.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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