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고 ‘대립’하는 대통령의 공식…협치는 ‘마이너스’
야당과 타협 시도 않고 최후 수단인 ‘거부권’ 남발…극단 대립만 야기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취임 후 세 번째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협치 제로, 무한 대치’의 국정운영 방식을 재차 확인했다.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할 거부권 카드가 일상화하면서 진영 간 강 대 강 충돌은 심화하게 됐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윤 대통령이 대결 정국을 풀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극단적 정치 실종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이날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로 돌려보냈다. 국회가 이 법률안을 법률로 확정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여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만큼 법안들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거부권 행사에 따라 쟁점 법안의 ‘여야 대립 → 야당 단독 처리 → 여당 거부권 건의 → 대통령 거부권 행사 → 대립 심화’가 공식처럼 일상화했다. 타협과 양보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정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고, 방송법은 정치에서 더욱 자유로운 방송을 만들겠다는 취지인 만큼 거부권을 통해 무효화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란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과 5월 각각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때는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그 이유를 밝혔다. 이번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을 재가하는 형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극단적·예외적 조치인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해당 권한의 주체인 대통령이 사유를 직접 설명하는 과정조차 생략했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에 따른 권한으로, 삼권분립 체제에서 대통령이 입법부 결정을 견제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의회 민주주의 정착과 맞물려 최근에는 극히 예외적으로 행사돼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6회 행사한 이후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문재인(0회) 전 대통령들에게선 2회를 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협치 악화를 보여주는 불명예 지표들은 차곡차곡 누적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세 번째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세 전임 정부 기록을 넘었다. 이미 윤석열 정부 들어 헌정사 초유의 야당 불참 대통령 시정연설, 헌정사 최초 장관 탄핵소추 등이 이뤄졌다.
거부권 일상화의 근본 원인으로 정치 전반에서 악화한 극단적 대결, 협치 실패가 꼽힌다. 지난 대선 결과가 0.73%포인트 차로 갈리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새 정부 출범 후 ‘반짝 협치’ 국면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역시 정치 실종 국면을 타개하기보다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지는 최고책임자로서 협치와 타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드물었다.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거대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하지만 이를 외면하면서 국회에서는 야당의 일방통행, 국정에서는 여권의 일방통행이 계속됐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단독 회동 요청을 잇따라 거부했다. 국정 메시지 면에서도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전까지는 대결 정치를 부추기는 발언이 주를 이뤘다. 최근 민생·현장을 화두로 메시지를 보완하고 협치를 내세웠지만, 이번 거부권 행사로 여야의 타협 없는 대치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정인·유설희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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