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지역 소멸’의 늪

기자 입력 2023. 12.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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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 사이 ‘지역 소멸’은 대중매체를 넘어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교육과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며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 양질의 대학과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유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올해 대학을 뒤흔들었던 글로컬 대학 정책도 이러한 논의의 일환이다.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지역 소멸과 관련된 논의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평소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역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지역 문제의 당사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입을 닫게 되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역 소멸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일명 ‘스카이’ 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지역에 내려가서 그곳 대학원생들과 합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타’가 왔다고 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은 불평등, 지구화, 도시 재생 등의 거창한 주제를 고민거리로 꺼내들었는데, 지역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과가 당장 내년에 문을 닫을까봐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서울의 대학원생들에게 지역 소멸은 추상적인 학문적 연구 문제지만, 지역 대학원생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다. 이러한 격차는 몇달 전 참석한 지역 소생 전략 수립을 위한 국제포럼에서도 느껴졌다. 내가 참관한 세션의 패널들은 대부분 해외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로 채워졌다. 지자체는 거액의 예산을 들여 호텔 숙박비와 교통비를 제공하며 이들을 모셔왔다. 구색 맞추기로 주최 지역의 행정관료가 패널에 끼여 발언을 했다. 다른 패널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한 지역 당사자로 최근 지자체의 업적을 강조하는 와중에 수치를 크게 잘못 말해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모습은 내부의 인력과 자원이 고갈되어 외부에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지역’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가 입을 닫게 된 이유는 ‘그럴싸한 주제로 지역을 말하는 외부인’에서 ‘지역 문제의 당사자’로 위치가 이동하며, 지역 소멸이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인 듯하다. 모순되게도 지역 당사자의 위치는 오히려 지역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입지가 좁게 만든다.

전문화된 인력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공간인 대학원을 예로 들어보자. 학부에서 대학원으로의 전환은 학교의 서열에 따라 도미노 이동이 이루어져왔다. 국내에서 외국 대학 대학원으로 이동하거나, 지역에서 서울로 이동하며 ‘학력 업그레이드’를 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지역 대학원이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입학 문턱을 낮추고 학위 취득을 더욱 쉽게 만들어 직장인이나 외국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한 이러한 방법이 표면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성과 수치를 만드는 전략으로 채택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역 대학원의 교육 수준과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공부를 하고자 하는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로 향하게 한다. 올해 학부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몇명이 학과 대학원 진학을 상담해왔다. 하지만 나는 선뜻 학생들에게 학과 대학원에 들어오라고 권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서울에 있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반대로 서울 소재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해당 대학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해 그에 맞춰 추천서를 써주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역을 벗어나는 것이 이들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지역에 남고자 하는 똑똑한 학생들을 서울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지역 대학은 생존을 위해 바둥거릴수록 늪에 빠져들고 있는 기분이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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