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에서 무방비로 잠든 히틀러…쏴 죽일까, 말까 당신의 선택은?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2. 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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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문학동네 펴냄
생물학적·환경적 자극 아닌
위계·도덕성·종교적 신념이
행동 결정하는 맥락을 형성
악하면서도, 선을 추구하는
인간 행동의 양면성 대해부
아돌프 히틀러. [사진 출처=AP연합]
당신이 아돌프 히틀러의 벙커에 잠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인류사적 범죄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저지른 가해자는 둔기와 총기를 든 당신이 다가온 줄 모른 채 잠들어 있다.

히틀러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 합당한가? 총기 방아쇠를 당겨 숨통을 끊더라도, 둔기로 내리쳐 피흘리게 만들더라도, 인류가 겪은 슬픔을 해원(解寃)할 수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악독한 범죄자를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우리들 중 절대 다수는, 그러나 평화주의자이기도 하다. 인간은 폭력에 반대한다. 때로 악하면서, 동시에 선을 추구하는 양면성. 인간이란 경계는 모호하다.

왜 같은 인간인데도 어떤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관대하고 또 어떤 때는 끔찍한 표정으로 사람을 대할까. 다시 말해서, 도대체 인간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합적인 저 질문으로 인간의 본질을 해명하려 시도한 책이 출간됐다. 신간 ‘행동: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의 모든 것’은 “‘종의 기원’의 찰스 다윈도 감격했을 책”(뉴욕타임스), “‘총균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통섭의 장엄함”(스켑틱)이란 평이 뒤따른 명저다.

만약 당신이 벙커에서 방아쇠를 결국 당겨버렸다고 가정을 덧대보자.

사건 ‘1초’ 전, 뇌에선 변연계가 자극을 받았다. 변연계란 대뇌피질과 간뇌 사이의 경계부로, 귀 바로 위쪽의 뇌를 뜻한다고 한다. 전두엽(이마엽) 겉질이 행동을 조절하거나 제약하는데, 이 겉질의 뉴런이 근육까지 전달된 것이다. 1초 사이 손가락을 당긴 움직임은 ‘격발’이란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을 만들었다.

손가락을 젖힌 작은 움직임은, 그러나 아무 이유 없는 무(無)에서 창조된 게 아니다. 모든 행동은 뇌를 부추긴 감각정보에 따른다. 사건 몇 분 전 혹은 몇 시간 전, 정보의 수용정도에 따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등 호르몬이 당신의 중추에서 작용했다. 그 결과 신경생물학적 범주에서 ‘격발이 합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중이던 1914년 크리스마스 날 상대의 언어로 “쏘지 말라”고 말한 뒤 만나 독일군과 연합군들 실제 사진. ‘크리스마스 정전(停戰)’로 불리는 유명한 사건이다. 신간 ‘행동’의 저자 새폴스키는 이 책에서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원인에 대해 질문한다. [사진 출처=Imperial War Museum]
시계추를 좀 더 앞으로 돌려 ‘그’ 행동을 하기 며칠 전 또는 몇 달 전 겪은 정보는 그 행동을 시작한 원인일까 아닐까. 그러면 청소년기는? 유년기는? 심지어 태아기는? 당신이 격발한 행동은 수백~수천 년 전에 벌어졌던 인류사 궤적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모든 역경은 DNA에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책은 주장한다. 인간 행동은 ‘생물학적 인자와 환경적 자극에 따라 조정되는 무엇’이라고 말이다. 인간은 방아쇠를 당기도록 악한 방향으로 진화하지도, 총부리를 거둬 상대적 선만을 추구하도록 진화하지도 않았다. 유전자가 무언가를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인간 행동의 원인이 문화나 문명 때문만인 것도 아니다.

인간 행동의 근원은 인간 스스로로 전혀 알지 못하는, 내부적 힘들의 영향의 함수로 결정된다. 저 내부적 힘의 함수란 바로, 맥락(脈絡·context)이다. 뇌와 문화는 공진화한다. 첫째 위계에 순응하거나 저항하기, 둘째 도덕성의 문제, 셋째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종교적 심성 등이 사건을 일으키는 행동을 결정할 ‘맥락의 하부’를 이룬다.

먼저 위계부터. 위계란 불평등을 의례화함으로써 현상 유지에 이바지하는 체계다. 위계와 서열에 동조할 것인가, 아니면 소속되거나 복종할 것인가. 안정된 위계가 모두에게 이득이면 좋지만 서열 불평등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걸 깨달으면 ‘영웅적 행동’이 하나의 대안이 될 때가 있다.

인간사회엔 도덕적 행동에 관한 몇몇 규칙들이 있다. 세상은 협력을 선호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대립하는 상황에선 선(善)을 향한 결정을 멀리하게 되고, 때로 전략적으로 다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을 빙자한 공리주의적 시각도 취한다. 덜 이기적이지만 나와 다른 타인의 도덕성에 직면하면 최악의 행동을 향해 돌진하는 게 인간이다.

타인에 관한 이해도, 그리고 종교도 사건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감정이입, 공감, 연민 등은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방식들이다. 하지만 이기심이 한 점도 없는 이타주의는 가능할까. ‘신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일수록 타인에게 더 친화적인데, ‘신이 자신을 좋게 보도록 만든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본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14년의 12월 25일, 독일군에 맞섰던 연합군은 상대의 언어로 “쏘지 말라”고 말하며 적대행위 금지를 약속하고는, 무인지대에서 만나 함께 캐롤을 불렀다.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정전(停戰)’ 얘기다. 방금까지 총질을 가하던 이들은 자신이 죽인 자의 장례예배를 함께 올렸다. 희미한 유대, 인간 본성과 행동의 이처럼 복합적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결론으로 돌아가자. 벙커에 잠든 히틀러에게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말 것인가. 책의 논리대로라면 정답은 이렇다. “우리가 비난하고 처벌하는 최악의 행동은 생물학적 과정의 산물이다. 하지만 같은 이치가 최선의 행동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자비와 살육이란 서로 다른 결론은, 모든 ‘나’에겐 ‘둘 다 정답’이란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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