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외교의 ‘다른 말’, 키신저

작전명 ‘폴로’. 1971년 7월1일,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비밀 방중 작전에는 700년 전 중국을 여행한 탐험가 마르코 폴로의 이름이 붙었다. 당시 리처드 닉슨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던 키신저는 외부엔 아시아 순방이라고 해놓고 파키스탄으로 갔다. 7월8일 키신저는 야히아 칸 파키스탄 대통령 초청 만찬 도중 복통을 핑계로 ‘휴식’에 들어간다. 그렇게 기자들을 따돌린 그는 다음날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저우언라이 총리와 마오쩌둥 주석을 만났다. 그의 방중은 이듬해 2월 닉슨 대통령과 마오 주석의 역사적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이 극비 작전은 미 국무부도, 중앙정보국(CIA)도 몰랐다고 한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세계 외교사에 영원히 남을 작전이었다.
닉슨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후, 1973년 국무장관까지 겸임한 키신저의 ‘무기’는 외교였다. 그만큼 세계 질서에 굵직한 역사적 분수령을 만들어낸 외교관도 찾기 힘들다. 1972년 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으로 데탕트(긴장 완화)를 구축했다. 1973년 ‘파리 평화협정’을 통해 미국을 오랜 베트남전쟁의 악몽에서 건져낸 것도 그였다. 그해 또 다른 ‘셔틀 외교’는 아랍과 이스라엘 간 전쟁의 휴전을 불러왔다고 평가받는다. 키신저는 베트남 평화협정의 공으로 197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전쟁은 2년이 지난 1975년 마침표를 찍으면서 그의 수상은 논쟁 거리로 거론돼 왔다. 코미디언 톰 레러가 “이제 정치 풍자도 한물갔다”고 남긴 악평이 그랬다. ‘키신저 외교’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그에겐 이만한 굴욕도 없겠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외교 행적 곳곳에서 미국의 국익을 중시한 현실 정치 신봉자였기 때문이다. 고령에도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던 그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중 수교를 이끌었던 그가 양국의 패권 다툼이 고조된 시기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키신저는 생전 인터뷰에서 “가장 즐기는 스포츠 게임이 뭐냐”는 질문에 “외교”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키신저를 뛰어넘는 외교 전략가들이 많았으면 한다. 늙은 말이 길을 더 잘 안다 했는데, 꽉 막힌 남북관계 국면에 키신저라면 어떤 훈수를 뒀을지 궁금하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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