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이순신 보며 K 낯설게 하기...창작연극 ‘신파의 세기’

이동인 기자(moveman@mk.co.kr) 2023. 12. 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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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연극 '신파의 세기'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정진새는 K 문화에 대한 '낯설게 하기'를 시도했다.

정진새 연출은 연극계 뿐 아니라 예술 문화 전체의 문제점으로 부각하기 위해 K팝을 등장시켰다.

정 연출은 "극중에서 K팝은 연극의 대척점에 있다. 성공에 대한 신파적 요소도 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며 "작품에서나마 연극과 K팝을 동급으로 만들어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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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에 대한 객관적 고찰 시도
예술 상업화에 대한 비판
젊은 연출로 주목받는 정진새
벽안의 베튤이 연기한 이순신
대학로 쿼드서 17일까지 공연
‘신파의 세기’ 극중극에서 베튤(왼쪽 두번째)이 이순신을 연기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신파의 세기’를 연출한 정진새 감독(왼쪽)과 디아스 포라 역을 맡은 베튤. 서울문화재단
창작 연극 ‘신파의 세기’의 극작과 연출을 맡은 정진새는 K 문화에 대한 ‘낯설게 하기’를 시도했다. 낯설게 하기란 친숙한 관념을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멀리서 조망하는 기법이다. 러시아 문학 비평의 한 기법으로 이용되기 시작해 모든 예술 장르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연극은 시작 전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프로젝트 네옴시티를 연상시키는 영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나라는 중동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치르치르스탄이라는 가상의 신흥 부국이다. 소금 사막에서 리튬이 발견되며 돈방석에 앉았고 국민을 단결시킬 문화를 선정하기로 한다.

자그마치 30억 달러를 주는 경쟁 입찰에 한국 국립현대극장 직원 미스터케이가 기획재정부의 등쌀에 못 이겨 한국의 연극을 수출하기 위해 파견된다. 치르치르스탄에 와서야 이 경쟁 입찰의 경쟁 상대가 브라질 삼바와 한국의 K팝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문제는 이 나라의 유력한 승계자인 공주가 얻고 싶은 것은 일제 강점기 1910~1940년 당시 유일한 문화 공연이었던 연극의 새로운 물결이었던 신파이자, 한국의 천만 관객 영화들을 관통했던 신파적 요소다. 이 연극에서 신파는 연출자가 정한 감정에 호소하는 눈물 콧물 짜내기로 정의된다.

공주는 젊은 시절 한국에서 유학했다. 치르치르스탄도 러시아로부터 다른 나라보다 독립이 늦었고 실제 민중의 삶은 고단해 가족애에 호소하거나 극복의 성공담에 국민들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잘 꿰뚫고 있다.

미스터케이는 경쟁 입찰에서 신파를 설명하기 위해 현지 배우를 통해 ‘울지마라 홍도야’ ‘약속’ ‘명량’, ‘국제시장’ 등의 작품을 패러디하는 극중극을 선보인다. 하지만 정작 미스터케이는 물론 신파극을 연기하며 눈물을 쏟는 치르치르스탄의 배우들조차 감정만을 앞세운 이 작품들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기 시작한다. 특히 이순신 역할이나 홍도 역할을 맡는 배우로 튀르키예 출신 ‘베튤’을 내세워 신파를 객관적으로 보고 신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효과를 살려냈다. 낯설게 하기 기법이다.

미스터케이는 국립현대극장에서 좋은 작품을 10개 올리면 빚만 남을 뿐이라며 답답한 속마음을 드러낸다. 한국 연극계의 어려움과 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낸 것이다. 예술은 자발적인 노동이 됐고 돈이 되지 않자, 자신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고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순에 빠진 예술가들의 현주소를 그려낸다. 극중에서 ‘예술가가 되지 말고 차라리 땅주인이 되어라’는 호소를 통해 쓰라린 예술가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정진새 연출은 연극계 뿐 아니라 예술 문화 전체의 문제점으로 부각하기 위해 K팝을 등장시켰다. 그는 2022년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2021년 백상예술대상 젊은 연극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정 연출은 “극중에서 K팝은 연극의 대척점에 있다. 성공에 대한 신파적 요소도 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며 “작품에서나마 연극과 K팝을 동급으로 만들어 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너도나도 ‘K’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이나 국위 선양과는 거리가 먼 연극에 K를 붙여 자조해봤다”고 덧붙였다.

디아스포라 역을 맡은 베튤은 “한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부터 살아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만 튀르키예 출신이라 외국인 여성으로 대우받으며 살아왔다”며 “이순신 역할의 극중극에서 제가 이순신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이 연극이 보여주려는 방향성”이라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제작한 이 연극은 서울 대학로 동숭동 쿼드에서 1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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