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만들어낸 ‘죄’···HIV에 다른 미래를[책과 삶]

휘말린 날들
서보경 지음|반비|488쪽|2만5000원
기자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들은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카페에서 비감염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HIV는 함께 식사, 운동, 목욕을 해도 감염이 불가능하다. 고혈압처럼 약물로 ‘관리’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그런 의학적 사실들을 알면서도 명함을 건넬 때 두려움이 꿈틀거렸다. 두려움을 숨기려 애썼지만 자신의 시시함을 들킨 것 같았다.
의료인류학자이자 HIV·에이즈 인권운동 활동가인 서보경은 <휘말린 날들>에서 다양한 인류학·사회학·역사학 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란 무엇인지’ 밝힌다. 에이즈는 HIV 감염으로 인체 방어 면역력이 떨어져 여러 합병증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에이즈와 HIV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저 막막한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서보경은 어떻게 에이즈 공포가 동성애 혐오와 결합해 ‘죄’로 취급받게 됐는지, HIV 감염인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며 어떤 감정을 겪는지, 의료 현장에서 치료를 거부당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추적한다. 실제 HIV 감염인의 일상 경험을 사례로 담았다.
에이즈 공포가 극심했던 1987년 제정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도 비판한다. 이 법은 HIV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하면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한다.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해 6개월 이상 HIV가 미검출된 상태에선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해도 감염 가능성이 없다. 기자도 여러 감염내과 전문의에게 확인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법원의 입장은 “그 위험이 ‘0’으로 된다고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서보경은 ‘감염되다’라는 수동태 표현을 거부하고 ‘감염하다’라는 중동태 표현을 쓴다. HIV 감염인을 ‘앞줄에서 휘말린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HIV에 먼저 감염한 사람으로서 ‘뒷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있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이런 재정의에는 한국 사회가 HIV를 제대로 직면하고 공동체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희망과 의지가 담겼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HIV에 휘말리기를 바란다. HIV에 더 많은 사람들이 노출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략) 생명의 공통성 속에서 서로 이어져 있는 우리가 함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HIV에게 다른 미래를 주어야 한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대통령 “언론 자유가 특권은 아니다”…‘그알’ SBS 노조 반발 겨냥
- 대전 찾은 이 대통령, 유가족에 비서실장 전화번호 건네며…“미흡한 것 있으면 연락하라”
- 대전 화재 사망자 다수 나온 공장 헬스장···“도면·대장에 없는 공간”
- [BTS 컴백 D-day]“역사적 자리니까 음악이라도 듣고 싶었는데”…원천 차단에 아쉬움도
- [속보]이 대통령, 다주택 공직자 부동산 정책 과정서 배제 지시
- [속보]대전 화재 공장 대표 “죽을 죄 지었다” 유족에 사과
- BTS 컴백 공연에 외신도 “한국 소프트파워의 성대한 귀환”
- [경제뭔데] “재미없는 적금?”…요즘은 게임하고 운동하며 금리도 받는다
- 김혜경 여사, 문재인 전 대통령 장모상 빈소 찾아 조문
- 150만 유튜버 ‘구 충주맨’ 김선태, 수많은 경쟁률 속 선정한 첫 광고는 ‘바로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