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의 세계 지배

한겨레 입력 2023. 12. 1. 09:05 수정 2023. 12. 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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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지난 25일 비공개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버전의 홍보 애니메이션 갈무리

박권일│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넥슨의 게임 홍보 영상에 이른바 ‘남혐’(남성 혐오) 또는 남성 비하를 암시하는 손 이미지가 다수 들어갔다는 논란이 일자 관련 기업들이 즉각 사과했다. 남초 커뮤니티는 “의도한 게 아니”라는 제작사 해명에도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사태가 커지자 언론들도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최초 문제제기를 요약하면, 영상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들의 손 모양이 지금은 폐쇄된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로고, 흔히 한국 남자의 작은 성기를 가리키는 손동작으로 알려진 ‘그 손가락’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즉, 홍보 영상 곳곳에 의도적으로 특정한 손가락 모양을 그려 넣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건 ‘메갈리아’ 로고의 손가락과는 조금씩 달랐다.

‘메갈리아’ 로고

직접 검증해보기로 했다. 만약 일부 주장처럼 ‘한국 남자의 작은 성기’를 조롱하기 위해 ‘메갈 손가락’들을 그려 넣은 게 사실이라면, 그런 사람이 세상에 단 한명만 존재할 리 없다. 또한 넥슨 게임 홍보 영상에서만 그 짓을 했을 리도 없다. 웹 곳곳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을 거라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구글의 ‘이미지 검색’ 서비스를 활용해 ‘그 손가락’과 유사한 이미지들이 얼마나 나오는지 찾아봤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이 생명이기에 방법론도 밝혀둔다. ‘남혐’ 이미지로 지목된 그림에서 손가락 부분을 캡처한 뒤 구글 이미지 검색을 돌렸다(원본 보정은 하지 않았다).

구글 이미지 검색화면 갈무리. 왼쪽부터 일본 애니매이션 ‘드래곤볼 매직’ 또는 팬아트 추정, ‘오소마츠상’.

결과는 놀라웠다. 한국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남혐’하는 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까지 한국 남자의 ‘쪼매난’ 성기를 비웃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들은 넥슨 홍보 영상의 그것보다 훨씬 더 ‘메갈 손가락’과 비슷했다. 이외에도 ‘그 손가락’이 나오는 그림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어찌 된 일일까? 사라진 ‘메갈리아’가, ‘남혐’을 일삼는 한국 여자들이, 은밀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각국의 일러스트, 애니메이션에 한땀 한땀 ‘그 손가락’을 그려 넣은 걸까?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백번 양보해서 그 많은 이미지 중 한두장이 고의로 ‘그 손가락’을 의도한 것이라 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혐오 표현’(hate speech), 즉 약자·소수자 차별 선동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링의 인물화’라 불리는 그림에서 어떤 사람은 젊은 여성을 보고, 어떤 사람은 노인을 본다. “올 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가 “오빠 만세”로 들리는 ‘몬더그린 효과’도 감각 혼동의 전형적 사례다. 망치를 든 사람한테는 온 세상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군사문화와 남근중심주의를 논의하며 “미사일과 폭탄이 남근의 형태를 띤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사일과 남근이 비슷하게 생긴 이유는 군사문화와 남근중심주의 때문이라기보다 기능상 ‘그렇게 생겨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쟁광 남성이라도 자기 팬티 속 ‘그것’을 본떠 미사일을 디자인했을 리 없다.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는 “E=mc²는 가장 빠른 것(빛)에 특권을 부여하기 때문에 섹슈얼리티에 물든 방정식”이라고 한 적이 있다. 자연과학 역시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페미니즘의 어떤 주장이 억지스럽다 해서, 혹은 ‘메갈리아’의 어떤 극단적 행태가 비판받을 만하다고 해서 ‘남혐’ 운운하는 억지가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상대의 오류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는 ‘그쪽이야말로주의’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확증편향’으로 인해 단순한 사실조차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건에서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기업들이 “의도한 게 아니”라면서도 즉시 사과했다는 점이다. 사과할 이유가 없는데 왜 사과했을까? 남성 게임 유저가 많으니 납작 엎드린 것이다. 2016년 넥슨 게임 여성 성우 퇴출 사건이나 2021년 지에스(GS)25 편의점 홍보물 사태 때도 그랬다. 이렇게 잘못된 신호를 계속 주니 트집 잡는 남성들의 효능감은 황홀하게 치솟고, 유사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사실관계와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시장논리로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격이다. 지금 당장, 이 광란을 멈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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