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 좇아 아랍·중국인 몰렸던 ‘동양의 여왕’… 350년 식민지배 아픔도 공존[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입력 2023. 12. 1. 09:00 수정 2023. 12. 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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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31)자카르타
8세기 향료무역 거점으로 이름
16세기부터 유럽서 잇단 침략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 세우며
식민통치·저항의 역사 이어져
물타툴리 소설 ‘막스 하벨라르’
“불쌍한 자바인은 채찍질…”
무자비한 수탈체계 등 고발
자카르타 시내의 야경.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인구 약 1067만 명이 거주하는 메가시티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다. 게티이미지뱅크

“난 알았어. 처음부터 알았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끝이 없다는걸. 끝나지 않을 거야. 계속, 계속해서 끝없이 가야 해. 투쟁의 길, 그 길의 끝은 어디며, 인간이 찾아 헤매는 행복의 길, 그 길의 끝은 어딜까?”

‘끝없는 길’(1952)에서 현대 인도네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목타르 루비스는 말한다. 작품 배경은 일제 강점기(1942~1945)와 혁명 투쟁기(1945~1947), 주인공 이사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는, 겁 많고 소심한 전형적 소시민이다.

일제 패전과 함께 영미 연합군이 들어오고, 네덜란드가 다시 인도네시아를 식민화할 음모를 꾸미자, 인도네시아 민중들은 분개해 혁명(독립) 투쟁에 나선다. 주변 사람 눈치를 보다 얼떨결에 혁명 대열에 뛰어든 이사는 임무 수행 때마다 마음 졸이다 앓아눕곤 하는 나약한 성격이다. 소설 주제는 그의 내적 각성이다. 루비스는 묻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겁쟁이 소시민 이사는 투쟁의 와중에 점차 혁명의 당위를 깨닫고, 체포돼 고문당하면서도 혼자 의연하게 동지 이름을 불지 않는다. 임포텐츠로 고통받던 나약한 지식인이 자유, 평등, 정의의 힘을 내면에 품고 꿋꿋한 투사로 변신하는 과정은 오랫동안 식민의 고통을 견디면서 해방을 열망했던 인도네시아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자바섬 북서부 해안 저지대에 있다. 인구 약 1067만 명이 거주하는 메가시티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다. 20세기 초 약 11만6000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지난 100년간 약 100배나 늘었을 정도다. 자카르타는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다. 이곳을 장악하면 자바섬과 수마트라섬 사이의 순다 해협을 지배하면서 동서 바닷길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세기 말, 타마라 왕국이 이곳에 처음 항구를 건설하고, 순다클라파(순다의 코코넛)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순다클라파는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1000년 동안 도시 이름으로 쓰였다. 8세기 중엽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에 진출하면서 자카르타는 향료 무역의 중간 거점으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향료를 좇아 유럽 침략자들이 자카르타에 나타난 것은 16세기 초였다. 1513년 포르투갈 선박이 최초로 자카르타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도시를 통치하던 파자라란 왕국은 자바섬 동쪽에서 일어난 이슬람 왕조인 데막을 견제하려고, 포르투갈을 끌어들여 순다클라파에 요새를 건설하려 했다. 이는 데막의 반발을 불러왔다.

1527년 데막은 순다클라파를 정복하고 포르투갈 세력을 쫓아낸 후, 도시 이름을 자야카르타로 바꿨다. ‘승리의 도시’란 뜻으로, 오늘날 자카르타의 기원이다. 이로써 인도네시아 힌두-불교 시대가 저물고 이슬람 시대가 열렸다. 17세기 초 이 땅에 네덜란드 세력이 등장했다. 1581년 독립 선언 이후, 향신료를 얻을 길이 사라진 네덜란드는 1602년 동인도회사를 조직해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동인도회사가 나타났을 때, 자카르타는 데막에서 독립한 반텐 왕국이 지배했다. 1605년 네덜란드는 말루쿠제도 암본섬을 강제 점령한 후, 항료 생산지와 무역항을 차례로 정복하는 한편, 반텐이 독점하던 후추 독점권을 빼앗으려 애썼다. 그들은 1619년 자야카르타를 무력으로 점거해 상관(商館)과 요새를 건설하고 동인도회사 본부를 세운 후, 도시 이름을 바타비아로 바꾸었다. 1942년까지 약 350년 동안 이어진 식민시대의 시작이었다.

고층 아파트와 단층 주택이 혼재하는 자카르타 시내의 모습(왼쪽 사진). 자카르타 시내의 도로가 자동차들로 가득 차 있다(오른쪽).

인도네시아인의 저항은 끈질겼다. 자바 남부 고와 왕국은 1666년부터 3년 동안 마카사르에서 피어린 전쟁을 치렀고, 중부 마타람 왕국은 약 200년간 네덜란드와 싸웠다. 수마트라 북부의 아체 왕국은 1873~1903년 20만 명의 희생을 치른 후 멸망할 때까지 네덜란드 패권에 도전했다. ‘마카사르 전쟁시’는 네덜란드와 맞서 싸운 마카사르인들의 영웅적 무훈을 기록한 작품이다.

17세기부터 자카르타는 ‘동양의 여왕’으로 불렸다. 요새와 운하, 창고와 주택, 반듯한 도로 등 유럽풍 첨단 도시에 홀린 아랍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 등이 부를 좇아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18세기 중반엔 인구가 급증하면서 도시가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타고난 장사꾼인 중국계 화인들이 그 희생자가 되었다. 1740년 네덜란드인과 인도네시아인은 폭동을 일으켜 화인 상점을 약탈하고 1만여 명을 학살했다.

1799년 동인도회사 파산 후, 자카르타는 네덜란드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서남쪽에 총독 관저, 행정청, 대성당 등 웅장한 건물을 지어 이주했고, 구도심은 인도네시아인이 몰려 사는 퇴락한 빈민가로 전락했다. 자카르타의 이런 이중성은 식민 통치의 구조적 결과이고, 현재까지 해소 못 한 차별과 억압의 반영이다.

식민 통치는 무자비했다. 그들은 자바섬 전역에서 쌀 대신 커피와 차, 설탕과 담배를 재배하게 강제했다. 그 탓에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을 독점 지배하면서 기적적 호황을 맞이했으나, 인도네시아 민중은 기름지고 너른 땅을 두고도 굶주림에 시달렸다. 네덜란드 시민조차 이를 비판할 정도였다.

‘막스 하벨라르’(1860)에서 에두아르드 데케르는 ‘물타툴리(Multatuli)’란 필명으로 식민 정책의 야만성과 가혹한 수탈체제를 고발했다. 물타툴리는 ‘겪을 만큼 겪었다’란 뜻이다. “불쌍한 자바인은 채찍질당하고 자기 논에서 추방되어 굶주린다. 반면 바타비아에선 네덜란드를 부국으로 만들어 줄 수확물을 가득 실은 배들의 갑판에 국기가 펄럭인다.” 항거도 거셌다. 디포네고로 전쟁 기간(1825~1830)에 농민 약 20만 명이 목숨을 바칠 정도였다. 1870년 이 정책은 결국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폐지됐다.

20세기 들어 자카르타는 민족주의 열풍을 타고 독립운동이 불타올랐다. 1920년대 독립 영웅 아크멧 수카르노가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내세우면서 민족주의 운동의 깃발을 올렸고, 최초의 근대소설 ‘고통과 번민’(1920) 이후 작가들은 근대적 각성을 촉구하면서 계몽에 나섰다. ‘시티 누르바야’(1922)에서 마라 루슬리는 아버지 빚을 갚으려고 악당 다툭 마링기와 결혼한 주인공 누르바야와 그 연인 삼술바흐리의 비극적 죽음을 다루었다. 이 작품은 강제 결혼 등 낡은 사회제도의 폐해를 고발하고, 현대사회에서 올바른 삶의 방식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1942년 일본은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면서 침략해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인도네시아 전역을 강점했다. 인도네시아 민중을 전쟁에 동원하고 자원을 쉽게 수탈하려고 일제는 수카르노를 석방하고, 민족운동을 돕는 척하면서 식민 체제를 굳히려 애썼다. 시인 하이릴 안와르는 그 허위를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나는 야수/ 무리에서 빠져나온// 총알이 내 껍질을 꿰뚫을지라도/ 포효하며 내 길을 갈 것이다.” 안와르는 그 길이 천 년 동안 이어질 행복의 길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1949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를 몰아냈고, 1961년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와 뒤이어 집권한 수하르토는 모두 피의 통치를 거듭하면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고 친인척들 재산을 늘리는 데 광분했을 뿐 시민 자유를 증진하고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에 따라 경제성장이 중산층을 만들지 못하고 빈부 격차를 가속하는 어이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오늘날 자카르타는 격차 지옥에 더해 기후위기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17㎝씩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려고 인도네시아는 보르네오섬 누산타라로 수도를 이전하기로 했다. 수천만 명이 행복의 길을 찾아 몰려들었던 동남아 최대 도시 자카르타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출판평론가

■ 용어설명 - 동인도회사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이 회사는 주식회사 형태로 이뤄졌으나, 함선 150척과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전쟁 수행, 조약 체결, 식민지 건설 등을 스스로 행할 수 있었다. 자카르타에 본부를 두고 동인도회사는 아시아 전역에 식민 거점을 건설한 후, 육두구, 후추, 설탕 무역 등을 독점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 회사는 영국, 프랑스 등 다른 국가와 경쟁에 밀리면서 1799년 파산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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