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전문 건축가, 그가 집 안에 온실 만든 사연 [집 공간 사람]
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하늘과 식물을 품은 텐들러 다니엘(43·어번디테일 건축사사무소 소장) 건축가의 집은 방문자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품게 하는 주택이다.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한옥을 닮은 요즘 주택은 어떤 모습일까'. 유리 천장으로 쏟아지는 햇살, 집 안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식물들, 단출하게 자리 잡은 한식 방에 이르기까지, 텐들러 소장은 질문에 대한 이상적인 답을 물색하고 그렇게 변모시키는 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서울 강북구 솔샘로의 밀집한 주택가에 자리한 '솔샘주택'(대지면적 159㎡,연면적 94㎡)은 곳곳에 집주인만의 족적이 담긴, 그렇게 온전한 답이 된 집이다.
유년 시절, 집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시골의 주택이건, 도심의 아파트이건 우리의 유년에는 그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특별한 감각들이 있다. 그 잔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공간을 다시 일구고 싶은 열망도 진해지기 마련. 독일인 아버지와 파독 간호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텐들러 소장에게는 어린 시절 종종 방문했던 한국 외갓집과 부모님과 살던 독일의 단독주택이 그랬다. 두 집에서 얻은 영감은 잊지 못할 추억이자 반드시 재현해야 할 꿈으로 남았다. "어릴 적 뛰놀던 한옥을 짓고 싶어 한옥 건축가가 돼 한국에 정착했는데, 14년 만에 독일 집의 추억을 간직한 주택을 이곳에 지었네요. 오랜 시간 노력해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에요."
미션! 마당을 집 안으로 들여라
솔샘은 본래 50년 된 단독 주택이었다. 오래된 동네의 순박함이 좋았고, 관리하기 편한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단박에 매입했다. 여러 여건상 기존 주택을 개조하는 리모델링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일과 병행하다 보니 설계에만 수년, 공사에는 일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4월에서야 완성이 됐어요. 원래 모습은 물론이고, 비슷한 사례도 찾기 힘든 모습이죠. 유일무이한 집이라서 마음에 들어요."
밖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집은 현관이 열리는 순간부터 놀라움의 연속이다. 맨 처음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따사로운 햇볕이 드리운 중정과 중정을 둘러싼 자연 친화적인 공간들. 주방과 다이닝 공간 사이 안뜰이 있고 위는 유리 천장으로 활짝 열려있다. "집주인이자 설계자로서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은 바로 안마당이에요. 건축가로선 미니멀한 건축을 추구하지만 적어도 식물에 한해서는 확실한 맥시멀리스트거든요. 집을 짓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한 요인이 식물이었죠. 마치 야외에 있는 듯 식물 속에 둘러싸여 살기 위해 온실처럼 집을 설계한 거예요." 식물을 땅에서, 그것도 집 안에서 키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부 바닥을 흙으로 채우고 유리 천장을 설치해 햇살을 내부로 들였다. 바닥에 사비석을 깔고 같은 돌을 일일이 깨서 벽을 채우며 평범했던 주택의 내부를 차근차근 자신만의 온실로 바꿔나갔다.
상당한 공간을 안뜰로 만들다 보니 실내 공간이 크지 않지만 웬일인지 답답하지가 않다. 빛과 자연적인 질감, 규모를 세심히 매만진 덕분에 그의 바람처럼 식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개방감이 넘치는 공간이 됐다. "모든 공간이 중정을 바라보고 있어요. 거실이든, 방이든, 어떤 공간이든 이 공간을 거쳐야 갈 수 있기 때문에 집에 있는 동안 자연을 제대로 즐기며 지낼 수 있어요. 거친 돌을 맨발로 밟는 걸 좋아하는데, 어린 시절 독일의 옛집에서 경험했던 그 느낌이에요. 중정을 보면서 그 집의 마당 구석에 있었던 작은 온실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한옥의 정취를 입히다
이 집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부분은 현대식 주택이지만 한옥 분위기가 난다는 점이다. 한옥의 중정처럼 가운데 마당을 둔 'ㅁ' 자 구조도 그렇고, 구석구석에 한옥의 미감이 흐른다. 특히 안방은 일면 단순해 보이는 구조와 마감 안에 만만찮은 공력이 숨어있다. 장인의 손을 빌려 벽과 창호를 전통 한지로 마감하고 문은 한옥을 짓는 목수가 직접 제작했다. 바닥이 윤이 날 때까지 옻칠을 하는 수고를 들인 것도 단순한 멋내기 용이 아니다. "어머니를 위해 만든 공간이에요. 어머니가 노후를 한국에서 보내고 싶어 하시는데 돌아오시면 낯설지 않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길 바랐죠. 당신이 살았던 한옥처럼요."
마감재 역시 대부분 한옥에 들어가는 재료를 사용했다. 다이닝 공간에 바닥과 벽은 표면이 불규칙한 사비석을 채웠고, 거실 바닥엔 거친 코르크를, 창틀은 나무를 사용했다. 실용에 집중하면서도 자연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 한옥 고유의 분위기를 가미한 것. 기존 집의 안방 공간에 마련한 아늑한 거실은 생활하면서 더욱 만족감을 느끼는 공간이다. 천장을 목재로 마감하고 정사각 나무 창을 통해 마당 풍경이 들어오는 이곳은 개방감이 넘치는 온실 정원과 달리 종일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 곳곳에는 반려묘들을 위한 집사의 마음도 숨어있다. "높은 층고와 까칠한 바닥, 긴 선반 등은 실은 고양이들을 위한 인테리어예요. 그들의 일상과 동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이 집에 온 후로 하루의 흐름을 잘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중정에 앉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밖에 나와서도 그 풍광이 잊히지 않아요." 천천히 애정과 노력을 쏟아부어 완성한 집에 사는 감상은 단순한 만족감 그 이상인 듯 보였다. 텐들러 소장은 "하루의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순간 경험해 온 적 없던 위안을 얻는다"며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하게 집에 머무르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그렇게 저절로 일상을 다시 살아가는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휴식을 얻고, 회복이 존재하는 곳을 집이라 부른다면 반려 식물과 반려묘에게도 이 집은 분명 집다운 집이었다. 이 집에 온 뒤로 고양이 세 마리의 활동력이 좋아진 건 물론이고 시들했던 식물들도 하나같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집사의 설명이 덧붙었다. 화분에서 흙으로 옮겨 심은 식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쑥쑥 자라서 유리 천장을 뚫을 기세다. "모름지기 휴식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집에서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용기를 내야 해요. 대세나 유행이 아니라 사람에게 주파수를 맞춘 집은 자기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거든요. 언젠가 주인이 바뀔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충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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