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주머니의 무게

박형준 산업1부장 2023. 11. 30.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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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기업 주재원으로 파견 가면 일본 도착 첫날에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개통한다.

그래야 집을 구할 수 있고, 은행 통장을 만들 수 있다.

정부가 재무적 부담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주머니를 없애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현 야당이 은행 등에 횡재세를 매기겠다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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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통신비 낮출 새 이통사 모집하지만
횡재세·특혜 시비가 기업 도전 의지 꺾어
박형준 산업1부장
일본에 기업 주재원으로 파견 가면 일본 도착 첫날에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개통한다. 그래야 집을 구할 수 있고, 은행 통장을 만들 수 있다. 휴대전화가 제2의 신분증인 셈이다. 가족 3명이 휴대전화를 개통하면 한 달 통신요금은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정부는 공공연히 이동통신사에 통신비를 낮추도록 압박했다. 일본 이동통신 시장은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 등 3개 회사가 삼등분하고 있는데, 정부가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지속적으로 유도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상황이 똑같다.

하지만 2019년 일본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쿠텐’이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국과 상황이 달라졌다. 알뜰폰 사업을 하던 라쿠텐이 자체 통신망을 구축해 명실상부한 제4 이동통신사가 된 것이다. 2005년 소프트뱅크에 이어 14년 만에 새 사업자가 생겨났다.

사실 이동통신 시장에서 신규 사업자가 탄생하기는 매우 어렵다.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도 꾸준히 들어간다. 하지만 라쿠텐은 “2025년까지 6000억 엔(약 5조3000억 원)을 투자해 기지국 등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하며 과감하게 도전장을 냈다.

4년이 지난 현재 라쿠텐은 어떤 상태일까. 꾸준히 흑자를 내며 성장하던 라쿠텐은 모바일 사업 진출 이듬해인 2020년에 곧바로 적자로 돌아섰다. 그 이후 매년 적자 폭이 커지면서 지난해에는 3716억 엔 영업적자를 보였다. 특히 4615억 엔이란 막대한 영업적자를 낸 모바일 부문이 전자상거래, 금융 등 다른 부문의 영업이익을 깎아먹었다. 그만큼 이동통신 신규 사업자가 짊어져야 할 짐은 무겁다.

다만 새 사업자가 생기면 소비자는 즐겁다. 라쿠텐이 1GB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0엔 플랜’ 등 파격 상품을 잇달아 내놨기에 소비자들은 통신비를 줄일 수 있었다. 경쟁사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유사한 상품을 내놨다. 라쿠텐 출현 이후 1위 사업자인 NTT도코모의 시장 점유율이 줄었고 전체 경쟁은 촉진됐다.

한국 정부도 분명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하며 최근 제4 이통사 모집에 나섰을 것이다. 정부는 2010년부터 7차례에 걸쳐 제4 이통사 도입을 추진했지만 예외 없이 실패했기에 이번에는 혜택을 대폭 늘렸다. 주파수 가격을 낮췄고, 금융 및 세제 혜택도 제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위 당국자는 사석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지더라도 과감하게 혜택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사업자 모집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부가 재무적 부담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모래주머니를 없애주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 사업자가 초창기 막대한 출혈을 감내한 이후 통신업 특유의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치자. 그때부터 소위 ‘횡재세’ 걱정을 해야 할지 모른다. 현 야당이 은행 등에 횡재세를 매기겠다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향후 정권이 바뀌면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도 있다. 이동통신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할 당시 엄청난 지출을 감수했다는 사실은 어느새 잊혀지고, 당장 현 시점에서 손쉽게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만 눈에 보일 수 있다. 일이 되게끔 만들기 위해 특혜를 언급한 고위 공무원까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모래주머니까지 달고 달려야 하는데 한국에서 누가 이동통신 사업을 하겠다고 손을 들겠는가.

박형준 산업1부장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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