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운]인플레 전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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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갖 물가가 뛰면서 생긴 다양한 신조어들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가격 및 임금 설정 행태의 변화가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의 주된 요인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은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IMF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선 긴축 정책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게 핵심"이라며 "인플레이션 완화 징후가 보인다고 섣불리 긴축 강도를 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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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갖 물가가 뛰면서 생긴 다양한 신조어들이다. 제품 용량이나 성분 함량을 줄이는 게 각각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이라면 낱개보다 묶음 제품의 값을 올리는 건 번들플레이션(bundleflation)이다. 동네 마트에서 목격할 수 있는 고물가 시대의 천태만상이다. 여기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구독료가 일제히 오르는 스트림플레이션(streamflation)까지 가세했다.
‘꼼수’ 가격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가격 및 임금 설정 행태의 변화가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현재의 인플레이션 기조는 세계적 추세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와 기후변화에 의한 농산물 가격 급등, 탈세계화에 따른 생산비용 상승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물가 압박을 받고 있다. 저명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 영국 런던정경대(LSE) 명예교수는 “지난 30년은 저금리 시대였지만 향후 30년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저축은 줄고 소비는 늘 것”이라며 고금리,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물가 상승의 주된 요인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은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의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전년 대비)로 미국(3.2%)을 앞질렀다. 한미 물가 상승률이 역전된 건 2017년 8월 이후 6년 2개월 만이다. 지난해 물가 정점 이후 올 9월까지 월평균 하락 폭도 한국(0.19%포인트)이 미국(0.36%포인트), 유럽(0.57%포인트)보다 작아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가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에너지·식량 자급도가 높은 미국에 비해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데다 환율 상승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동안 억누른 전기·가스료 등 공공요금 인상 압박 영향도 적지 않다. 미국에 비해 노동시장이 경직되고 시장 경쟁이 덜 치열한 한국의 경제 구조도 고물가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최근 식품 가격 등을 중심으로 물가가 반등하자, 한은은 30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올해와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3.6%와 2.6%로 올려 잡았다. 내년 말까지도 물가 목표인 2% 달성이 어려운 것이다. 고물가 국면이 길어지는 이른바 ‘끈적한(sticky)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인플레는 결코 만만한 적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 9월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부터 현재까지 56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111건 중 64건(57.6%)만 5년 내 잡혔다. 인플레가 1년 안에 진정된 사례는 12건(10.8%)에 불과했다. IMF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선 긴축 정책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게 핵심”이라며 “인플레이션 완화 징후가 보인다고 섣불리 긴축 강도를 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표적인 인플레 파이터인 폴 볼커 전 미 연준 의장의 회고록 제목 ‘Keeping at it(긴축 지속으로 버티기)’은 우리 통화당국도 주목해야 할 교훈 아닐까.
김상운 경제부 차장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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