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99) 황궁우와 조선호텔

기자 입력 2023. 11. 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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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작 알린 제사 공간, 일제에 의해 투숙객 편의장소로 전락
황궁우와 조선호텔 197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황궁우와 조선호텔 202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두 사진에는 서로 대비되는 두 개의 건물이 보인다. 앞쪽에는 높은 화강암 기단 위에 기와를 이은 전통 양식의 3층 팔각 건물이 있고, 뒤쪽에는 휘어진 모양의 20층 현대식 빌딩이 서 있다. 앞 건물은 황궁우(皇穹宇)이고, 뒤 건물은 웨스틴조선호텔이다. 50여년 사이에 호텔 건물의 외관이 조금 바뀐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황궁우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환구단의 시설이다.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를 잃은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대사관에 약 1년 동안 머물다 덕수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키려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자신은 황제가 된다. 그런데 황제가 되려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고, 이를 위해 1897년에 만든 시설이 환구단이다.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베이징의 천단(天壇)을 본떠 만든 환구단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에 따라 둥글게 만들었다. 이에 그 명칭과 한자 표기가 환구단(丘壇)과 원구단(丘壇 또는 圓丘壇)이 혼용되었는데, 2005년 문화재청에서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기록된 ‘丘壇’으로, 한글 표기는 고종이 제사를 지낸 1897년 당시 독립신문을 따라 ‘환구단’으로 정했다. 황궁우는 환구단이 만들어진 지, 2년 뒤인 1899년 신위판(神位版)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환구단은 1913년 철거된다. 일제가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최신식 숙박시설을 이 자리에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1914년 개관한 4층 서양식건물인 조선호텔로, 당시 한반도의 교통과 관광을 총괄하던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직접 운영했다. 조선호텔은 욕실이 딸린 객실과 대형 홀을 갖춘 한국 최고의 호텔이었다. 당시 관광안내서는 호텔 안에 황궁우가 있어 이용객들이 조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소개했다. 호텔 부속시설이 된 환구단은 신성한 제사 공간에서 투숙객의 산책 및 연회 장소로 전락하였다.

해방 후에도 유지되던 조선호텔은 한국관광공사와 미국 항공사가 합자하여 1970년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였다. 1979년에는 외국인 투자자가 웨스틴으로 변경되었고, 1983년에는 삼성에서 인수, 1992년에는 다시 신세계가 넘겨받았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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