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의 우리문화 들배지기] 손잡고 더불어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금 한국사회는 인간과 기계, 동과 서, 남과 북, 진보와 보수는 물론 세대, 남녀, 빈부에다 참과 거짓과 같은 세상 모든 벽들로 막혀 있다. 이런 갈등의 도가니는 광복 후 80여년간 내 편 네 편의 갈라치기와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져 가기만 한다. 정치로는 도저히 풀 수 없음이 자명해졌고, 3만5000달러에 걸맞은 3만5000달러 이타적인 문화 창출만이 답이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서 보수의 린치에다 진보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신영복(1941~2016)의 ‘쇠귀체’는 죽어서 더 큰 울림을 준다.
‘손잡고 더불어’를 보자. 내용과 조형의 일체다. 필획과 글자는 물론 ‘잡’과 ‘불’자는 아예 ‘ㅂ’을 공통분모로 한 글자로 연대해 있다. 더구나 전서 필획으로 한글을 쓰고 있다. 훈민정음의 ‘자방고전(字倣古篆)’ 원리 그대로 더 강한 한글글자꼴을 ‘쇠귀체’로 발명해냈다. 비첩(碑帖)혼융의 추사체와 같은 맥락이다. 미학에 가서는 동시대 궁체의 전형미와 반대의 역동적인 힘이 내장되어 있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 사색>에서 “궁체는 글의 내용에 상응하는 변화를 담기에는 훨씬 못 미친다”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쇠귀체에 대해 “어머님의 글씨에서 느껴지는 서민들의 체취와 정서는 궁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미학으로 이해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쇠귀체의 조형은 내용이 규정하면서 현대 서를 도약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남천강, 영남루, 영남알프스, 아리랑은 물론 김종직, 사명대사, 김원봉과 같은 밀양 산천의 물성과 인물의 절의(節義)가 다 녹아 있다. ‘처음처럼’ ‘더불어 한길’ ‘더불어 숲’ ‘만남’과 같은 무수한 시서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주목할 점은 통혁당 사건의 무기수라는 엄혹한 실존에서 꽃핀 ‘쇠귀체’의 나를 비운 연대정신이다. <강의 - 나의 동양 고전 독법>에는 “연대는 반드시 하방(下方)연대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물이 가장 큰 바다가 될 수 있는 원리가 바로 하방연대에 있는 것이지요”라고 나직이 말한다. 바로 내가 먼저 무릎을 꿇고 약자와 눈높이를 맞춘 연대정신의 결정이 쇠귀체이다. 이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다르다.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 김정희의 ‘하심(下心)’과 오버랩된다. 추사가 ‘백파에게 써서 보인다(書示白坡)’는 편지에 나오는 주인과 종의 대화를 읽어보자.
[종] “어떤 것이 바로 소인의 진아(眞我)입니까?” [주인] (자신을 가리키며) “바로 나다.” [종] “만약 그렇다면 주인 어르신은 무엇을 가지고서 나가 되었습니까?” [주인] “바로 너다.” [종] “….” [주인] (종이 이해하지 못하자) “불법(佛法)이란 평등하여 남이니 나니, 귀하니 천하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분별이 없느니라.”
바로 ‘나가 너’인 하심과 하방은 여기서 둘이 아니다. 쇠귀체나 추사체가 던지는 정신은 강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먼저 약자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아픔과 기쁨의 교직’에서 쇠귀는 다시 말한다. “우리는 아픔과 기쁨으로 뜨개질한 의복을 입고 저마다의 인생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환희와 비탄,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입니다.” 쇠귀의 행동대로 이제는 적과 ‘손잡고 더불어’ 우리가 만든 벽을 우리가 허물자.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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