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전 KIST서 창업···16명중 유일 상장하죠"
15명은 스타트업 접거나 KIST로 복귀해
세계 최초·유일 레이저 의료·미용기기 개발
내년 2월 코스닥 상장···글로벌 진출 확대
“과학기술인·엔지니어들 기술창업 늘어야”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당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만 16명의 연구원이 2년 겸직 허가를 받아 창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20년 넘게 사투를 벌이며 이번에 코스닥에 상장하는 경우는 저밖에 없네요.”
세계 최초·유일의 레이저 미용·의료 기기 3종을 개발한 주홍 레이저옵텍 대표는 30일 서울 사무소가 있는 강남 국제전자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겁 없이 창업의 돛을 달고 험난한 여정을 헤쳐왔다”며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합병 방식으로 내년 2월 1일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으로 최근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인하대에서 레이저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KIST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업에 도전한 뒤 2002년 말 아예 KIST를 나와 사업에 전념해왔다.
퍼스트무버의 길을 걸어온 주 대표는 “피부 미용 레이저 기기의 매출 비중이 80%가량”이라며 “백반증과 건선 등 질환 치료용 레이저 기기의 매출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유럽·동남아시아 등 40여 개국에 수출하며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약 300억 원, 25억 원 올렸다.
그는 “KIST에서 창업 승인을 받을 때는 파장대에 따라 특성이 다른 광통신용 부품을 검사하는 반도체 레이저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이내 광통신 분야 사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며 KIST로 복귀할까 고민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우연히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를 참관했다가 병변 치료용 레이저 의료 기기가 중국산 조립품인 것을 알고 ‘이쪽으로 방향을 틀면 더 잘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중국산은 피부의 점을 깎는 방식으로 화상 위험, 색소 침착, 섬유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점의 멜라닌 세포를 잘게 쪼개 인체에 흡수시키는 대체 기기도 10배가량 비싼 것에 비해 레이저 파장 출력이 균일하지 않아 상당한 통증을 유발했다.
이에 주 대표는 특성이 다른 레이저에 맞는 엔진을 쓰는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했다. 그 결과 출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안정적 레이저 의료 기기를 내놓을 수 있었다. 곧바로 그는 KIST가 출자한 한국기술벤처재단과 엔젤투자자에게서 총 10억 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이 돈을 다 쓰며 통장이 제로가 돼 7~8명 직원의 월급을 주기 위해 사채까지 써야 했다. “당시만 해도 의료 기기 유통 구조가 문란해 물건을 줬다가 떼이는 사기도 당했지요.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어요. 하지만 원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죠.”
결국 그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곧바로 제품을 수주하면서 사채를 갚았다. 우선 병원에서 편하게 점·잡티 제거, 주름 개선을 할 수 있는 기기를 납품했다. 나아가 아토피 환자가 별로 없는 산·바닷가 근처의 자외선 파장에 맞춘 가스 레이저 의료 기기도 고체 레이저 방식으로 바꿨다. 이를 통해 투입 에너지의 레이저 전환율을 40%까지 높여 백반·혈관 치료 등의 새 길을 열었다. 2006년부터는 대만·싱가포르 등 수출에도 나섰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2007년부터 매출이 크게 오르자 자만심이 생겨 거의 망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11년 매출이 83억 원으로 올랐는데도 경영 전문가를 영입하지 않았다가 경영이 크게 부실해졌죠. 2015년과 2020년 운 좋게 벤처캐피털의 추가 투자를 받고 2014~2019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연구개발(R&D) 자금 65억 원도 지원받아 도약의 토대를 만들 수 있었어요.” 현재는 직원도 80여 명으로 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589㎚(나노미터·10억분의 1m)의 액체 레이저 파장도 고체 레이저로 구현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1~2년 내 상용화할 계획”이라며 “기존 제품에 비해 안전하고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주 대표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연구원이나 교수는 사회를 잘 모르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죠. 사회 공헌이나 상품 개발 마인드도 없고요. 하지만 창업하면 기술력의 비중이 5%라면 나머지 기본 소양을 비롯해 중요한 요소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주 대표는 산학연 R&D 협력과 관련, “과제가 실패로 끝나면 연구소나 학교는 빠져나가고 기업만 돈을 문다. 과제를 통해 돈을 버는 기술 기업이 얼마나 나왔는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면서도 “기술 기반 창업을 적극 독려해야 성장 동력을 확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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