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메이플 ‘집게손가락’ 콘티, 남자가 그렸다[못 이긴 척, 여혐 앞장선 넥슨]
다른 업체 ‘40대 남성 애니메이터’ 담당
뿌리·넥슨, 최근까지 8차례 이상 검사
뿌리 측, 온·오프라인 집단 괴롭힘 당해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은 ‘메이플스토리’ 여성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엔버)의 ‘집게손가락’ 포즈는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이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이 장면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스튜디오 뿌리의 직원은 다른 장면을 담당했음에도 온라인에 이름과 사진이 공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원청사인 넥슨은 정확한 사실관계 조사 없이 강경 대응 메시지를 내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하청사를 압박했고, 하청사는 결국 사과문을 냈다. 일부 이용자들의 페미니즘 혐오 정서에 편승한 넥슨의 이런 대응이 게임업계 내 사상검열과 여성 괴롭힘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문제가 된 영상의 최초 콘티는 스튜디오 뿌리가 아닌 다른 업체의 40대 남성 애니메이터 A씨가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넥슨 측에서 제시한 마감기한이 급박해 구한 추가 인력이었다. A씨는 콘티에 엔버가 왼쪽 손가락으로 반쪽짜리 하트를 만든 뒤, 여기에서 하트가 나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집게손가락 논란이 된 장면과 같은 자세다.
뿌리에서 이 콘티를 검수하고 총괄 감독한 이 역시 50대 남성으로 확인됐다. 총괄 감독은 캐릭터의 전반적인 포즈를 연출하는 역할로, 감독의 연출 아래 애니메이터들은 배경 작업과 동작을 구현하는 원화·동화 작업을 맡는다. 엔버가 나온 영상은 총 100여컷으로 30여명의 애니메이터가 투입됐다. 집게손가락을 그렸다고 알려진 뿌리 직원 B씨는 이 중 한 명이었다.
B씨는 논란이 된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담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B씨가 담당한 장면은 엔버가 돌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담당 애니메이터가 아닌 데다, 수십 명이 협업하는 구조라 특정 장면을 ‘은근슬쩍’ 넣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B씨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때문에 온라인에 신상이 공개되는 등 괴롭힘을 당하고 남초 커뮤니티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업체가 만드는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같은 작업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엔버뿐 아니라 논란이 된 다른 작업물 역시 악의적 편집이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현직 애니메이터는 “감독도 체크하고, 작화 감독도 한 프레임씩 검수한다”면서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으면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뭘 의도했네‘ 하는 게 눈대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애니메이션은 러프 과정, 클린업 과정, 취합해서 최종합성하기 전 확인하는 과정이 다 있는데 웬만하면 다 확인이 된다”고 했다.
음모론 검증 없이 “강경 대응” 예고한 넥슨
넥슨 측은 최초 콘티부터 엔버의 손가락 자세를 인지하고 있었다. 뿌리와 넥슨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콘티를 포함해 8차례 이상 검사·확인 과정을 거쳤다. 넥슨 측은 한 달간 콘티, 시사 영상, 전체 영상을 여러 차례 나눠 확인하면서도 손가락 모양을 지적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청사 의도에 반하는 그림 자체를 넣을 수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넥슨은 별다른 사실관계 확인 없이 업체 측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뿌리 측은 지난 26일 오후 4시 낸 입장문에서 “(손가락 모양이) 동작과 동작 사이에 이어지는 것이지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절대 아니”라면서 “해당 스태프는 키 프레임을 작업하는 원화 애니메이터로 저희가 하는 모든 작업에 참여하거나 이러한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3시간 뒤인 같은 날 오후 7시 김창섭 넥슨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는 유튜브 방송으로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뿌리와 관련된 조사 결과에 따라 메이플뿐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남초 커뮤니티 주장에 따라 엔버의 손가락 모양을 ‘남성혐오’로 규정한 뒤, 뿌리 측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것이다. 넥슨은 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과문을 올렸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하거나, 업체에 법무팀을 보내겠다는 등 압박을 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뿌리 측은 온·오프라인 상에서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전날 디시인사이드에는 B씨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카카오톡 프로필이 무단으로 유출됐다. 일부 커뮤니티 유저들은 사무실에 찾아가 직원들의 얼굴을 찍어 커뮤니티에 올리거나 사무실 문을 두드린 것으로 파악됐다.
김환민 IT노조 부위원장은 “넥슨이 이 문제를 남혐으로 넘겨짚으면서 모든 책임을 하청으로 돌린 것”이라며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하청 측에) 물어보지 않은 것은 넥슨도 적극적으로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넥슨 측은 경향신문의 해명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1301532001#c2b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1301534001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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