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10>페르난데스 아르망, 쌓아올림의 조형미학..현대조각으로 재탄생한 산업폐기물
특히 오래되고 녹슨 원형의 철물로 만들어진 100단 높이의 거대한 조형물이 눈에 띄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 쌓아올린 철물이 폐차된 자동차와 함께 버려진 ‘차축’임을 발견하게 된다. 자동차 바퀴를 지지해주는 차축이라는 자동차 부품이 규칙적으로 쌓아올려짐으로써 '수백만 마일'(1989)이라는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산업폐기물을 쌓아올려 관람자의 눈앞에 예술작품으로 재등장시키는 세계적인 프랑스 조각가 페르난데스 아르망(1928~2005)의 작품이다.
1928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아르망은 니스의 국립장식미술학교와 파리 에꼴 드 루브르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아르망의 예술세계는 아마추어 예술가이자, 사진가, 첼로 연주가, 그리고 골동품 딜러였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산업폐기물인 시계, 자동차 부품, 버려진 옷가지나 가방, 오래된 숟가락 등의 실제 사물들을 자신의 예술재료로 주목한 것 역시 이러한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닌가 싶다.
또한 독일 다다이즘 예술가로 유명한 쿠르트 슈비터스의 아상블라주(Assamblage·일상의 생활용품이나 폐품을 모아 2차원의 캔버스에 겹겹이 붙여 입체적으로 표현한 기법) 작품의 전시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 아르망이 평생을 두고 추구하던 ‘쌓아올림(accumulation)’의 조형 어법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르망은 처음에는 추상회화 작업을 했다. 고무도장으로 평면캔버스에 연속적으로 겹쳐서 찍어내며 ‘쌓아올림’이라는 자신만의 조형 어법을 개발하고 '까쉐트'(Cachets·낙인) 시리즈라는 추상화로 1958년에 첫 전시를 열었다.
이후 아르망은 점차 철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산업폐기물을 직접 모아 입체적으로 ‘쌓아올려’ 소비사회가 남긴 실제의 물건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제시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1960년대부터 아르망이 가담했던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즘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프랑스어로 ‘새로운 리얼리즘’이라는 뜻의 누보레알리즘은 1960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예술운동이다.
우연히 발견된 사물이나 이미지를 미술에 그대로 가져와 보여줌으로써 사물은 일상에서 사용됐던 기능을 상실하고 전혀 다른 리얼리티의 조형 언어로 탄생해 관람자 앞에 새롭게 제시되는 것이다. 손으로 예술작품을 아름답게 제작하던 것을 예술의 가치를 두던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은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선택해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예술가의 정신적 행위로 옮겨졌고, 이것은 현대미술의 아버지인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개념과 문맥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다양하게 녹여 자신이 선택한 산업폐기물들을 여러 방법으로 쌓아 올렸다. 오래된 폐기물을 쌓아올릴 때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자르고 태우고 찌그러뜨려 변형한 후 쌓아올리기도 했다. 산업폐기물들을 상자나 투명하고 거대한 유리통 안에 채워 넣으며 쌓기도 하고, 야외의 공공장소에 시멘트와 뒤섞어 거대한 높이로 쌓아올리기도 했다. 투명한 유리통 안에 쌓여 채워진 산업폐기물들은 서로 뒤엉켜 유리통 외부에서 알록달록하게 보여, 마치 3D로 만들어진 ‘아상블라주’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또는 비슷한 형태의 한 종류의 폐기물을 채색한 후 비스듬하게 조금씩 겹쳐가며 쌓아올리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 물체가 움직여지는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아르망이 선택해 쌓아 올린 대량생산된 소비제품의 폐기물들은 군중들의 소비생활을 가장 잘 반영해 주는 물건으로 현대 산업사회의 지표기호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쌓아올림’이라는 조형적 몸짓은 폐기품들을 리드미컬하고 질서정연하게 배열해 시각적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따라서 그의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은 그의 조각 작품이 주는 형태미에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되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선택한 산업폐기물이 의미하는 현대미술의 반미학적 정치성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아르망의 조각 작품은 현대미술이 가진 반미학의 전략을 품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순간적으로 몰입시키는 시각적 예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서희정 성신여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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