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어느 쪽인가

김혜영 기자 입력 2023. 11. 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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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아랍 대사들이 던진 화두, '전쟁 범죄'에 대하여


2023년 11월 22일, 서울 종로구의 주한 오만대사관에 주한 아랍대사단의 대사와 대사대리 등 14명이 모였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로 가까운 국가들인 만큼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회견을 연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주일·주한 팔레스타인 대표 '왈리드 시암'

회견에선 왈리드 시암 주일·주한 팔레스타인 대표가 연사로 나섰는데, 그가 전한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대학살'을 규탄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현재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문제 인식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전시 내각과 현격한 입장차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한데, 과연 팩트에 기반한 인식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하마스처럼 '전쟁 범죄' 저질렀나?


먼저 '전쟁 범죄'의 정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전쟁 범죄'는 교전 당사자들에게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국제인도법 분야에서 파생된 개념입니다. 국제인도법에는 수많은 '해야 한다'와 '하지 말아야 한다'로 구성된 여러 가지 규범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특정 규범들을 위반했을 경우 '전쟁 범죄'로 규정합니다. 즉, 국제인도법상 일부 규범의 위반을 범죄화한 것이 '전쟁 범죄'인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군사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보다 민간인의 사망 등 '부수적 피해'가 과도한 경우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의도적인 경우, 그리고 인도적 원조에 사용되는 시설이나 차량을 의도적으로 공격하거나, 구호품을 전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민간인들을 굶어 죽게 하는 경우 등이 '전쟁 범죄'에 해당합니다.

이런 경우들에 비춰봤을 때,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을 촉발한 하마스의 경우,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게 확실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3대 절기의 축제일에 비무장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하고 납치한 것은 그 자체로 민간인들을 노린 것이기 때문에 '전쟁 범죄' 사례에 맞아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김상걸 단국대 교수도 SBS와의 인터뷰에서 "민간인이나 민간인 집단에 대해 의도적으로 공격을 행하는 행위는 전쟁 범죄가 확실하다"며 "하마스가 인질을 납치한 것이나, 키부츠 마을에서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을 총으로 마구 쏴서 살해한 행위는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 (ICC) 검사 역시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질로 삼는 행위 등을 제네바 협약의 중대한 위반이자, 로마 규약상 특정한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며, 인질의 즉시 석방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하마스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병원과 학교, 난민촌 등을 공격해 수많은 주민들을 숨지게 한 이스라엘군의 공격과 구호물품 반입을 제한한 이스라엘 당국의 조치 등이 정황상 '전쟁범죄'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 '폴커 투르크'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하마스의 전쟁범죄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민간인을 집단적으로 숨지게 한 것도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국제사법기구에서 재직한 바 있는 한 전문가도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하며 '하마스가 숨어있어서 병원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측의 주장이고, 실제로 그랬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제 검사가 해야 할 일"이라며 "일반적으로는 하마스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중동 전문가인 성일광 고려대 연구위원도 "이스라엘의 정치인이나 관련자들의 전쟁 범죄 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국제형사재판소는 하마스의 인질 납치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민간인 공격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 검사장은 최근 성명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방글라데시, 볼리비아, 코모로, 지부티 등 5개 회원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 조사를 요구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가자지구·서안지구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2021년 3월 시작한 기존 수사를 이번 전쟁 상황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린이 사망자 6천여 명... 민간인 피해 큰 이유는


이 대목에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주민들을 사실상 인간 방패로 활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이 아무런 민간인들의 희생 없이 하마스를 궤멸시킬 수 있겠느냐',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이 반론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당국도 발표했지만, 알시파 병원뿐 아니라 많은 민간 가정집이 하마스의 근거지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이 구현되는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는 일정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제인도법도 전쟁 상황에서 적군을 죽이는 살상은 물론 민간인들도 숨질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군 공습에 의해 발생한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혜영 기자 kh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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