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김건희 명품 백과 함정취재 논란, 언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미디어오늘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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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KBS는 <경찰 비호 밀렵성행>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전남 신안군에서 경찰관 비호 아래 밀렵행위가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는데, 해당 지역 파출소에 근무 중인 순경이 밀렵꾼으로부터 돈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보도 이후 순경은 직위해제조치됐다. 논란은 순경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불거졌다. 자신에게 돈봉투를 건넨 사람은 KBS카메라 기자와 수렵보호단체회원이었으며 돈을 돌려줬는데도 KBS는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정취재로 인해 자신은 피해자라는 주장이었다.
순경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KBS기자는 순경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순경이 돈을 돌려준 이유는 카메라 촬영을 눈치챘기 때문이며 함정취재에 대한 검토를 해보겠다고 해명했다.
2013년 미국 ABC뉴스팀은 아이패드 하나를 공항에 일부러 흘렸다. 도난 신고가 잦은 공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사라진 아이패드는 공항 검색대 직원이 가져갔는데 ABC뉴스팀은 위치추적 앱을 통해 직원의 집을 찾았다. 직원은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고 했지만 위치추적 앱을 통한 알람을 작동시켜 집 안에 아이패드가 있는 걸 확인했다. 이 내용은 뉴스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함정취재는 국민 알 권리와 취재윤리 경계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상황에 따라서 함정취재는 환영을 받거나 아니면 취재윤리 위반의 정점에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방송계에선 흔했던 몰래카메라가 사라지거나 매우 불가피할 경우에만 활용하는 쪽으로 변화가 이뤄졌다. 오랜 관행이며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해명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함정취재를 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명품 가방 선물을 받는 장면이 공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함정취재 논란도 불거졌다. 명품을 구입하고 몰카를 기획한 사람은 기자였다. 몰카를 찍은 최재영 목사는 이전 선물을 들고 갔을 때 김건희 여사가 전화 통화에서 인사 청탁을 받은 정황을 목격했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이런 기획을 했다고 밝혔다. 있는 사실을 포착한 게 아니라 미끼를 던져 부정한 행위를 낚아올린, 전형적인 함정취재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부인의 사적공간에 카메라를 들고 간 문제는 보안이 뚫린 것이고 법적으로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함정취재가 과연 정당했는가는 저널리즘 가치 논쟁의 영역에서 다뤄질 내용이다. 김건희 여사가 사적인물로부터 선물을 받는 일이 전에도 있었고, 부정한 청탁 문제 소지를 밝히고 입증하기 위해선 함정취재가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취재 방식으론 과연 불가능했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다만, 함정취재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명품 가방을 받은 김건희 여사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이 크다. 우리 언론은 영상이 공개됐을 때 보도하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함정취재 논란이 김건희 여사의 선물 수수 행위를 덮을 수 없는 건 상식이다. 선물을 받은 장본인이 김건희 여사가 아닌 다른 공적인 인물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7월 김건희 여사가 해외 순방 도중 들었던 에코백 안에 명품 파우치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자 기사를 쏟아냈던 게 우리 언론이다. 김건희 여사가 순천시장에서 8만 원어치 장을 보고 상인에게 2만 원 웃돈을 얹어 10만 원을 건네 준 일화에 대한 뉴스는 어떤가. 김 여사가 명품 선물을 받은 장면이 이런 뉴스보다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대통령실 해명이 없는 것에 대해 언론이 질문을 쏟아내야 한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명품 선물을 반납해 보관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게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인지부터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언론에 묻는다. 김건희 여사 앞에서만 작아진다는 불명예를 언제까지 안고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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