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랑 게임 한판 하시겠습니까”[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

박병률 기자 입력 2023. 11. 30. 09:58 수정 2023. 11. 3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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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으로 본 손실회피성향

넷플릭스 오리지널드라마 <오징어게임>은 OTT계의 신화가 된 콘텐츠다. 2021년 9월 공개되자 마자 글로벌 열풍을 일으키며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모든 나라에서 1위를 한 첫 콘텐츠가 됐다. 외신들은 격찬했다. CNN은 “끝내준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넷플릭스 사상 최대의 히트 작품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가입자수가 폭증하면서 넷플릭스는 글로벌 넘버원 OTT로 확고히 자리매김했고, K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제작사들의 시각은 180도로 바뀌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황유선 연구위원에 따르면 올해 넷플릭스의 전체 TV 시리즈물 중에서 한국 콘텐츠 시청 시간은 14.6%에 달했다. 이같은 현상은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2021년 하반기 이후 줄곧 유지되고 있다고 황 연구원은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게임>은 서바이벌 예능으로 다시 태어났다. 전 세계에서 모인 456명의 참가자가 456만 달러의 상금을 놓고 겨루는 <오징어게임:더챌린지>는 지난 29일 기준 넷플릭스 영어권 TV부문 주간시청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개봉직후에는 무려 87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작품에 대한 낮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원채 강한 원작의 후광을 이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동혁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오징어게임>은 빚에 쫓겨 막다른 골목에 몰린 456명의 사람들이 456억원의 상금을 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담은 드라마다. 게임의 룰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딱지치기’‘오징어 놀이’‘줄다리기’ 등 어린시절 한국인들이 많이 놀았던 놀이다. 만만해 보이는 이 추억의 게임들은, 그러나 참가자들의 생사를 냉정하게 가른다.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함과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헤짚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동혁 감독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무렵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했다.

자료=넷플릭스

흥미로운 것은 생사를 건 게임이지만, <오징어게임>의 진행자들은 게임진행을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이 자유의사로 판단하고,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기훈이 게임에 참여하기로 했을 때도 그랬다. 10년 전 구조조정때 희망퇴직후 치킨집, 분식집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고 있는 그. 사채 포함 빚만 4억이 있다. 간만의 차이로 지하철을 놓치고 앉아 있는 기훈에게 의문의 남자가 묻는다.

“선생님 저랑 게임 한판 하시겠습니까?”

“뭐야 잡상인이야? 요즘 상술이 아주 다양하네”라며 무시하려는 찰나, 의문의 남자가 슬쩍 열어보인 수트케이스에는 5만원과 1만원 돈다발이 들어있다.

“선생님 딱지치기 해보셨죠? 저랑 딱지치기 해서 한번 이길때마다 10만원 드리겠습니다. 대신 잃으면 10만원 주셔야 합니다”

눈빛이 흔들리는 그에게 의문의 남자가 말을 덧붙인다. “선공 드리겠습니다”

이 한마디에 기훈은 벌떡 일어나 게임을 시작한다. “정말 내가 먼저 친다”

행동경제학자라면 기훈의 선택을 ‘손실회피성향’으로 설명한다. 손실회피성향이란 새로 얻는 이익보다 갖고 있던 것을 잃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를 말한다. 사람들은 1만원을 얻을 때 얻는 기쁨(효용)보다 1만원을 잃을 때 받게 되는 고통이 더 크다. 행동경제학자인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실험해보니 그 차이는 2.5배 가량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1만원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2만5000원을 벌때 느끼는 만족감의 크기와 같다는 뜻이다.

1000원을 얻을 때 얻는 효용이 10이면 1000원을 잃을 때 느끼는 효용은 25가 된다. 즉 잃을 때 얻는 고통이 얻을 때 얻는 기쁨보다 2.5배나 크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를 ‘전망이론(Prospect theory)’으로 이론화해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전망이론이란 ‘사람들의 판단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로 정의된다. 사람의 의사결정 기준은 고정되지도 않고, 수익과 손해를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이를 ①준거 의존성 ②민감도 체감성 ③손실 회피성의 3가지로 설명했다.

의문의 사나이가 5만원 돈다발을 살짝 보여주는 순간, 기훈에게는 그 돈이 자신의 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게임에 참가할까 말까 망설이는 그에게 “선공을 드리겠다”는 제안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됐다. 게임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저 돈은 그냥 잃는 것이 된다.

자료=넷플릭스

EBS의 한 프로그램이 서울 명동에서 비슷한 실험을 했다.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2만원을 나눠준다. 돈을 받아 눈이 휘둥그레한 사람들에게 “게임 한번 하시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오면 3만원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5만원을 얻게 된다. 단 홀수가 나오면 2만원을 되돌려받겠다고 했다. 사람들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게임을 포기했다. 3만원이 탐나긴 해도 이미 쥐고 있는 2만원을 잃는 것이 더 싫었기 때문이다. 반면 또다른 사람들에게는 먼저 5만원을 줬다. 그리고 나서 “아차 실수네요”라고 하면서 3만원을 되돌려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오면 이 3만원을 다시 드리겠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대부분이 주사위 게임에 참여했다. 처음 손에 쥐었던 5만원을 되찾고 싶은 심리가 작용했다. 실제는 내돈이 아닌데 말이다.

손실의 피하고 싶어하는 성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데가 마케팅이다. 대형마트에서 ‘1+1’ 행사를 보면 망설여진다. 사지 않으면 한개를 괜히 손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50%할인도 비슷하다. 지금 사지 않으면 저렴한 가격을 포기하는 것 같다. 결국 마음 약한 나는 “언젠가 살꺼, 그냥 사자”며 손을 내민다. TV홈쇼핑, 인터넷 쇼핑을 볼 때마다 결제를 해버리는 소비자들의 심리도 이와 똑같다. ‘지름신’이 왕림하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셈이다.

자료=넷플릭스

손실회피성향이 가장 잘 적용되는 데가 투자다. 손실회피성향은 원금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원금회복을 위해 물타기도 마다않는다. 실제 투자자들은 플러스난 주식은 먼저 매도하고 손실이 난 종목은 오래 보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준석 연구위원이 쓴 <주식시장 개인투자자의 행태적 편의>보고서를 보면 1일 보유뒤 이익이 났을 때는 41%가 팔았지만 손실이 났을 때는 22%만 팔았다. 이 보고서는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개인투자자 약 20만명의 거래내역을 분석해 만들었다. 이런 손실회피성향은 결과적으로 오르는 ‘좋은’ 주식은 빨리 팔고, 손실나는 ‘나쁜’ 주식은 오래쥐고 있어 계좌를 파랗게 만들 수 있다.

사실 주식은 수익이 났든 났든 파는 것 자체가 어렵다. 오르는 주식도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아 매도가 망설여지는데 이 역시 ‘오를 것 같은 가격’이 주는 손실회피성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사는 것은 기술, 파는 것은 예술’이라고 하는 격언이 있다. 파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이게 어디 투자만 그럴까. 인생도 마찬가지다. 박수 칠때 떠나라지만 이는 쉽지 않다. 갖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은 참 어렵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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