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정말 서민을 위한 건가
[왜냐면] 최한수│경북대 교수(경제학)
은행은 악당이 아니다. 은행에 대한 적대적 시각은 미 연준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국내은행들이 지난해 55조원, 올해는 이보다 더 많은 순이자수익을 거둘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 있다. 그러나 이것이 비난 받을 일인가? 만약 이처럼 높은 수익이 독과점 때문이라면 시장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그게 아니라 정책 변화에 따른 요행의 결과(말 그대로 ‘횡재’)라면 법을 통해 그 초과이윤을 환수하면 된다. 이러한 정도를 놔두고 대통령이 은행을 향해 ‘갑질’이나 ‘종노릇’처럼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다시 규제기관 수장이 은행장들을 만나서 ‘상생금융’을 꺼내며 협조를 구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돈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고금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의 은행에 대한 불만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의 역할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특정 집단에 낙인을 찍어 ‘그들’과 ‘우리’를 나눈 뒤 그 적대적 감정을 동력으로 삼는 정치를 포퓰리즘이라 부른다. 문재인 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던 현 정부가, 공매도 금지에 이어 금융 쪽에서 또 다른 포퓰리즘 정책을 추진하려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인다.
민주당의 횡재세 도입 주장은 국회라는 민주적 의견 수렴 과정과 논의의 장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는 낫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안에 담긴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이 역시 재고해야 할 대목이 적잖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과세 대상인 ‘초과이윤’의 근거가 취약하다. 법안에는 이를 “직전 5개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수익”이라고 정했는데 그렇게 정한 근거를 알 수 없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횡재세 부담은 궁극적으로는 은행이 아닌 주주의 몫이기 때문이다. 주주의 재산권 침해 논란이 최소화되도록 구체적 근거를 담아 합리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실제 매우 미숙한 방식으로 은행에 횡재세를 도입했던 이탈리아의 경우, 횡재세 도입 발표 당일 4개 주요 은행 주가가 6~11% 하락했다. 사라진 주주의 부는 횡재세를 통해 정부가 거둬들이고자 했던 금액의 2배가 넘었다고 한다. 만약 유사한 결과가 한국에서도 일어난다면 주주들에 의한 위헌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재정조달 목적의 정부의 부담금 부과에 강한 위헌심사기준을 제시한 바 있기에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민주당이 제시한 초과이윤 기준에 따르면, 올해와 지난해는 물론 2018년과 19년에도 무려 11개 은행에서 초과이윤이 관측된다. 문제는 이 시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대 수준으로 낮아 현재와 같은 고금리 상황이 만들어낸 초과이윤이 아니란 점이다. 이는 경제학적 측면에서 민주당 횡재세 법안에서 제시한 초과이윤 기준이 잘못 설계되었음을 시사한다.
민주당 법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횡재세를 항구화했다는 점이다. 법안에 따르면 부담금은 직전 5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넘을 때마다 발생한다. 이는 요행에 의해 발생한 과도한 이윤에 대한 일회성 과세라는 횡재세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다. 만약 횡재세가 항구화될 경우 은행들은 이를 줄이기 위해 왜곡된 행동을 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비효율을 낳는다. 횡재세와 별도로 경제적 지대에 대한 과세로 정당화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현재 세법 체계에 없는 매우 생소한 것이다. 물론 생소하다고 도입할 수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적어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불쑥 들어올 성질의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은행과 다른 금융기관이 직면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여당과 야당은 국회에서 횡재세 논의를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사실 외에도 ‘상생기여금’ 형태로 횡재세를 제도화할 경우 은행이 약속한 ‘은행 사회공헌 프로젝트’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은행 이외 다른 금융기관도 이를 납부해야 하는지, 기여금이 당기순이익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상한을 설정하는 등의 완화 장치를 둘 것인지, 그리고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이탈리아처럼 횡재세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지 않고 대신 납부금액의 2.5배 이상을 법정 충당금으로 적립하는 것을 은행에 허용할 것인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진정으로 서민을 걱정한다면 장외에서 ‘거위의 배’나 ‘자릿세’ 운운하며 비난에 열중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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