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2500원짜리 이발소의 가치

김제동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신부 2023. 11.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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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2500원짜리 이발소가 있었다.

가난하지만 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그 당시의 마음가짐과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꺾이지 않는 충실함과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갖게 했고, 이 가치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기쁨을 준다.

내 삶의 서사는 어떠하며, 또한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오늘의 나를 만든 수많은 사람과의 추억들, 그 추억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또한 재산을 가치 있게 사용하고자 살아온 내 모습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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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신부

고등학교 시절 2500원짜리 이발소가 있었다. 학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었고, 나도 그곳을 애용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나는 이유는 그것이 싼 곳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저렴한 곳에서 머리를 깎을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먼 거리이긴 했지만 방문했다.

그 이발소 아저씨는 지금 잘 계실까. 어느덧 노인이 되어 노년의 삶을 즐기고 계시리라. 지금의 내가 수백 배의 돈을 낸다고 해도 그때의 기쁨이 주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기쁨과 추억은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돌이킬 만한 사연이 있는 것이어야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그 당시의 마음가짐과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꺾이지 않는 충실함과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갖게 했고, 이 가치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기쁨을 준다. 사람의 재산은 그 사람의 가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음을 사회 경험을 통해 알게 되지만, 이와 반대로 재산을 위해 사람의 가치를 낭비하는 모습 역시 경험하게 된다.

인터넷 강의 플랫폼을 만들어 사교육 대표강사로 불리는 손주은 회장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재산을 불리려는 교육이 아니라, 가치교육에 힘쓰게 된다고 말하면서 오늘날 한국의 의대 열풍은 사교육 열풍의 연속선상에 있음을 언급하며, 더 나은 사회 발전을 위해 가치교육을 강조한 바 있다.

사람의 외모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를 드러낸다. 예쁘게 가꾼 얼굴로서는 파악할 수 없는 표정과 눈빛, 말투, 자세, 태도가 외모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쁨은 추억을 통해 만들어지고, 재산은 가치 있게 사용하기 위해 불리는 것이다.

내 삶의 서사는 어떠하며, 또한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오늘의 나를 만든 수많은 사람과의 추억들, 그 추억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또한 재산을 가치 있게 사용하고자 살아온 내 모습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첫째, 내 삶에 소중한 가치를 찾아보자. 몇 년 전 너무나도 아름다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여성 시인이 있었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시를 쓰고, 이를 인터넷으로 올리기 위해 순례 길목의 수도원에서 한 달간 지낸다고 했다. 또한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가치임을 삶의 경험에서 갖게 됐고, 종교적, 육체적 등등의 의미를 뛰어넘는 이 사랑이라는 가치 안에서 자기 삶의 형태를 한가지씩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족, 결혼, 무형의 사랑, 용서, 자비' 등 각자의 삶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서사를 만들어 온 가치는 무엇인가?

둘째, 그 가치들로 내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다시금 바라보자. 불안은 심리적 고통의 한 형태이다. 불안과 우울이 과거의 경험, 사건 등 특정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면, 그 원인을 극복하는 방법 역시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노래꾼이 노래하기를 멈추면 삶이 멈추는 것이지'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나 자신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든 추억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오늘날 자신의 모습 안에도 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독자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이 원고를 작성하는 오늘도 자신의 가치를 나누는 스스로의 모습에 기쁨을 얻는다. 그 기쁨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한 2500원쯤 될 것이다. 특별히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가치를 위해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과 내년도 수능을 준비할 수험생들을 위해 격려와 지지의 마음을 보태며,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 각자의 가치로 만들어 갈 아름다운 삶에 대해서도 기도한다. 김제동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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