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강한 진동’ 시민들 가슴 쓸어내려···지자체는 늑장문자로 빈축
30일 오전 4시55분쯤 경북 경주시 동남동쪽 19㎞ 지점(경주시 무문무대왕면)에서 규모 4.0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의 깊이는 12㎞로 경주를 비롯해 울산 등 영남 곳곳에서 지진으로 인해 흔들림을 느꼈다는 신고가 빗발쳤다.
경북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지진을 느꼈다는 유감신고는 총 123건(경북 59·울산 41·대구 15·부산 6·충남 1·전북 1)이 접수됐다. 대부분 지진이 났는지 확인하는 신고였다고 소방당국은 설명했다.
진도 4.0은 실내에 있는 많은 사람이 진동을 느끼고 일부는 잠에서 깰 정도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곳은 2016년 9월12일 국내 사상 최대 규모인 5.8의 지진이 발생했던 경주시 내남면과 약 20㎞ 떨어진 곳이다. 당시 이 지진으로 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기상청은 지진파 중 속도가 빠른 P파만 분석해 규모를 4.3으로 추정하고 전국에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뒤 추가 분석을 거쳐 규모를 조정했다. 기상청은 발생 후 2초 만에 지진을 처음 관측하고, 발생 8초 만에 긴급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경주에 사는 60대 김모씨는 “물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깨니 진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모씨(48)는 “7년 전 내남면에서 발생한 지진이 되살아나는가 싶었다”면서 “강한 흔들림에 한옥 지붕기와가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밖으로 나가 확인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어서 안도했다”고 했다.
포항시민 백모씨(59)는 “잠을 자던 중 침대가 마구 흔들리는 바람에 깼다”면서 “6년 전 생긴 포항지진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듯해서 다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모씨(60)는 “새벽에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운전 중이었는데, 강한 진동이 느껴져서 차를 도로변에 세워두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라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울산시 북구 강동동에 사는 최모씨(47)는 “경주 지진 진앙지를 보니 울산과도 가까운 곳이었다”면서 “건물이 왜 그렇게 흔들렸는지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대구의 수성구에서 거주하는 김모씨(38)는 “자다가 긴급 재난문자 소리에 놀라서 깼다”며 “TV를 틀어보니 긴급 속보가 나와 잠이 달아났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현재까지 파악된 지진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진앙지와 약 10.1㎞ 떨어져 있는 월성원전도 가동 중인 모든 원전에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도 안전 관련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진으로 인한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을 자세히 점검하고 향후 여진 발생에 대비해 지속해서 안전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포항공장 등 포항지역 철강기업도 특별한 이상이나 피해 없이 정상 가동하고 있다.
지진 8초 만에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한 기상청에 비해 경북도·경주시는 뒤늦은 재난안전문자로 빈축을 샀다.
경북도는 이날 오전 5시 29분에 ‘지진으로 인한 건물 붕괴, 대형화재 등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란 내용의 재난문자를 경북지역에 보냈다. 지진이 발생한 지 30여 분이 지난 뒤다.
경주시는 경북도보다 더 늦은 오전 5시 43분에야 ‘흔들릴 때는 탁자 밑으로 대피, 건물 밖으로 나갈 때는 계단이용, 야외 넓은 곳으로 대피하세요’라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보냈다.
경주시민 홍모씨(48)는 “이미 지진이 지나간 뒤에서야 대피요령을 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면피용으로 보내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경북도는 ‘지진·지진해일 재난 현장조치 행동 매뉴얼’에 따라 지진 발생 시 필요한 행동요령을 담은 재난문자를 추가로 보냈다고 해명했다. 이 매뉴얼에는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추가로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문자 발송 시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만큼 매뉴얼을 어긴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경북도 관계자는 “기상청에서 1차 재난문자를 보낸 만큼 경북도는 후속 여진 등 주의 차원에서 재난문자를 추가 발송했다”며 “늦장 대응이 아닌 상황을 판단하고 도민의 불안감 조성을 부추기지 않으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월성원전 수명 연장을 중단하고 폐로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2016년 경주지진 이후 정부가 벌인 단층 조사에서 월성원전 건설 당시 설계에 반영되지 않은 활성단층 4개가 새로 발견됐다”며 “이 4개의 활성단층은 월성원전 반경 21㎞ 안에 존재하는데 거대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월성원전으로부터 10㎞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오늘 지진은 잠시 잊었던 핵발전소 사고 불안감을 다시 키우고 있다”며 “월성원전 2·3·4호기 수명은 각각 2026·2027·2029년이다. 정부는 노후 핵발전소에 대한 무리한 수명 연장 추진을 중단하고 안전한 폐로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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