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문화 트렌드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미쉐린 가이드에서 최근 새롭게 별 1개를 받은 '메주'(Meju)를 비롯해 총 11개의 한식당이 이름을 올리며 약진했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권에서도 양념치킨, 김치찌개, 떡볶이 같은 한식 안주와 주류를 파는 한국식 포차가 현지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등 한식의 존재감은 빛을 발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K-푸드 열풍의 근간에는 바로 '발효'가 있다.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얻은 전통장과 김치의 스펙트럼은 식문화의 뿌리를 지키는 장인들과 이를 현대의 언어로 풀어내는 셰프들, 그리고 미식에 있어 새로운 경험과 가치, 건강, 맛 모든 면을 고려하는 세계인을 만나며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에빗(EVETT)
한식의 글로벌 위상이 달라짐에 따라 국내에서도 한식 문화와 역사 속에 담긴 귀중한 가치들을 지키고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보다 활발하게 이뤄진다. 특히 발효는 한식의 바탕에 촘촘하게 깔려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전통 한식 발효의 맛과 기법을 지키고 명맥을 이어나가는 명인들의 기술 전수와 보존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지정하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5호인 기순도 명인이 이어가는 370년 종가의 전통 장맛을 많은 이들에게 전수하고자 '기순도 발효 학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리며 화제를 모았다. 일일 체험 수준이 아닌 명인에게 직접 전통장에 대한 이론과 실습 전반을 배우는 깊이 있는 과정이다. 수강생들에게 전남 담양군 창평면 종가 고택의 역사와 전통이 담긴 기순도 장고지를 개방하며 전통 방식으로 장 담그는 법과 다양한 발효 기법을 활용한 종가의 음식 체험 등을 통해 한식의 뿌리를 지켜나가기 위한 선도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기순도 전통장은 일찍이 뉴욕, 파리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CNN 등 해외 매체에 소개되며 전 세계 많은 셰프들의 요리에 발효의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해왔다. 장고지에는 명인에게 전수받아 담근 세계적인 셰프들의 전용 장독대들이 시간을 더해가고 있다.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자리한 레스토랑 '에빗'(EVETT)의 조셉 리저우드 셰프도 그중 한명이다.
호주 출신으로 2020년부터 4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달성한 에빗의 리저우드 셰프가 선보이고 있는 메뉴들의 원천은 모두 한국의 식재료에 있다. 셰프가 개발하는 모든 레시피는 최상의 품질을 보장하는 제철 식재료는 물론 아직 사용해 보지 않은 새로운 한국 식재료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에서부터 시작한 산물이다.
한국 식재료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에빗만의 차별화한 독창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셰프의 요리를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근간에도 발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셰프는 한식 전통 발효를 이해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담양과 서울을 오가며 장독대에 끈기와 시간을 보태왔으며 그 과정에서 그의 음식은 장과 함께 깊게 익어갔다.
런치와 디너 단일 코스로 선보이는 에빗의 독창적인 메뉴들을 마주하면 한국 식재료와 발효 산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에 감탄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외국인 셰프이기에 고정 관념 없이 재료들을 대할 수 있었던 점도 강점이다.
대표적인 메뉴로 감과 고추장, 설탕, 소금을 섞어 말린 얇은 젤리에 기순도 딸기 고추장을 바르고 딱새우를 채워 말아낸 '고추장& 감 젤리'는 작은 항아리 위에 놓여 서빙된다. 이 메뉴는 한국의 간식인 쫀드기를 본 셰프가 고향 호주에서 어린 시절 먹었던 과일 젤리를 떠올리며 만든 메뉴다.
오메기떡에서 영감받은 한입 도넛은 실제로 셰프가 만든 메주를 플레이트 삼아 등장한다. 메주 자체를 그릇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고정관념이 걷힌 남다른 시선의 일부다. 훈연 참기름을 곁들인 메밀국수는 반죽 과정에서 한식 속 '삭힘의 미학'이 담긴 식혜를 활용한다. 후식으로만 접근하던 식혜의 새로운 발견이다.
설악산 개미를 활용한 소르베, 기순도 명인의 석장을 넣어 지은 토종 쌀밥, 된장 퓌레를 곁들인 스테이크, 그리고 기순도 된장을 캐러멜에 버무려 설탕물, 크림을 넣어 굳힌 수제 캐러멜까지 발효의 맛과 멋을 현대의 언어로서 풀어낸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공연이 식탁 위에 펼쳐진다. 셰프의 요리는 요리사들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오래되어 낡은 것이라 할지라도 다시한번 돌아보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 말라고 말이다.
◆블그레
'익숙함 속 섞음과 삭힘'을 기본으로 고조리서의 레시피나 전통 식문화의 근간이 되는 한식의 정체성과 현대의 조리법이 결합해 내는 생명력과 시너지를 경험하기에 좋은 공간. 김치와 전통장, 전통주 등 한식의 근간에 있는 발효의 미학을 타파스 형태로 풀어낸 다양한 요리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제철 식재료, 어간장을 활용한 드레싱, 액젓, 삭힌 장아찌 등 한식 발효 요소들의 창의적인 활용이 돋보인다.
◆해방촌 윤주당
남산 아래 해방촌에 자리한 전통주 전문점.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직접 술을 빚는 공간이어서다. 낮에는 봄부터 겨울까지 열두 달 계절의 변화와 흐름에 맞춰 술빚기 클래스를 진행하며 쌀과 물, 누룩으로 빚는 전통주의 매력을 전파하는 공간이다. 밤에는 전국 각 지역에서 빚은 전통주와 전통 누룩과 쌀로 빚은 하우스 막걸리에 다양한 한식 메뉴들을 곁들일 수 있는 현대판 주막으로 변모한다.
◆큔(Qyun)
발효를 기본으로 풀어낸 건강하고 색다른 형태의 가벼운 식사와 디저트를 곁들일 수 있는 공간이다. 발효 식료품을 판매하는 쇼룸도 겸하고 있다. 대표 메뉴인 '비건버터 발효커리'는 큔에서 직접 만든 비건 버터에 캐슈치즈와 여러 향신료를 넣어 끓인 비건 메뉴다. 철마다 우리 땅에서 나는 과일을 이용해 만든 비건 발효 아이스크림도 별미다. 토종 조선생강으로 발효 후 향신료와 함께 끓여낸 진저 시럽, 누룩소금으로 발효한 소스 등 식료품도 판매한다.
김성화 다이어리알 기자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