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마약 전단' 9시간 만에 해결…"잡힐 운명이었죠"[新경찰청사람들]
팀워크·동물적 감각으로 증거 확보…"큰 사건 해결하면 희열"
(서울=뉴스1) 송상현 유민주 이재명 기자 = "운이 좋았어요. 우리한테 잡힐 운명이었던 거죠."
수도권 대학가에 마약을 판매한다는 전단을 뿌린 피의자를 단 9시간 만에 붙잡은 광진경찰서 형사2과 강창호 경위(45).
강 경위에게 신속하게 범인 A씨(40)를 검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예상외로 겸손한 답변이 나왔다.
A씨는 서울 건국대와 홍익대는 물론 경기도 가천대에까지 액상 대마를 판매한다는 전단 200장을 살포했다. 대학가에 버젓이 침투한 마약 광고에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A씨를 빠르게 검거한 강 경위 덕에 공포는 금세 가라앉았다. 강 경위의 빠른 검거는 정말 운 때문이었을까, 15년 차 베테랑 형사의 여유일까.
◇ 블랙박스 확보·잠복 30분 만에 범인 발견…"운 좋았죠"
강 경위가 건국대 예술문화대에서 마약 전단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은 것은 지난달 23일 오전 11시쯤이었다. 전날 홍익대 미술대 건물에서도 같은 전단이 발견돼 이미 관할 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고 언론 보도까지 난 상황이었다.
강 경위는 "대학가 마약 전단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문제가 크다고 판단해 속도를 냈다"고 말했다.
강 경위는 건국대 인근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A씨가 학교에 들어오고 나간 모습을 발견했다. A씨가 건국대에 마약 광고를 뿌린 것이 사흘 전인 20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21~22일이 주말이어서 신고가 늦었던 것이다.
강 경위는 CCTV로 A씨의 동선을 계속 추적했다. A씨가 버스에 탑승한 사실을 확인했는데 하차 지점을 파악하려면 버스의 블랙박스가 필요했다. 강 경위는 버스 차고지로 향했다. 이때 첫 행운이 따랐다. 도착하자마자 해당 버스가 운행을 마치고 마침 차고지로 들어온 것이다. 블랙박스 영상으로 A씨가 송파구의 주택가에서 하차한 사실을 알게 됐다.
CCTV를 계속 추적했더니 A씨가 두 동짜리 빌라 단지로 들어가는 것이 확인됐다. 빌라 전체를 탐문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단 A씨의 외출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뜻밖에도 A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잠복 30분 만에 단지에서 나왔다. 강 경위는 "잡힐 범인은 잡히게 돼 있으며 누구에게 잡히냐의 차이일 뿐"이라면서 "A씨는 제게 잡힐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A씨가 속한 강력4팀은 숨죽이며 A씨를 쫓을 준비를 했다. 타이밍을 노리던 강 경위가 A씨와 살짝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A씨는 갑자기 골목길로 경로를 틀었다. 이에 강력4팀은 전원 A씨를 향해 달렸고 순식간에 체포를 마무리했다.
◇ "범행 뉴스 나왔다" 휴대전화 신속 압수로 증거 확보
A씨를 긴급체포하면서 강 경위는 본능적으로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마침 A씨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려 비밀번호를 풀어놓은 상태였다. 강 경위는 재빨리 비행기모드를 설정해 데이터를 끈 후 텔레그램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했다. 강 경위는 "긴급체포하면 원칙적으로 휴대전화를 압수할 수 있다"며 "대부분 암호가 걸려있고 심지어 폭파 기능을 활용해 대화 내용을 삭제하는 경우도 있어 증거 확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휴대전화에 많은 증거가 담겨있었다. 텔레그램 대화 내용에 A씨가 자신의 범행이 언론에 보도됐다며 누군가에게 자랑하는 글도 있었다. 강 경위는 재빨리 해당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증거로 확보했다.
A씨는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했고 불리한 증거가 나오면 묵비권을 행사했다. 주거지에서 나온 액상 대마를 자신이 개발한 '액상 담배'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광고 전단이 대마를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전단에 적힌 마약을 뜻하는 은어 '하이(high)'에 대해서도 "그냥 기분 좋다는 표현"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A씨의 태블릿 등에서 A씨가 마약을 팔기 위해 추가로 지어낸 홍보 문구와 마약의 사용법 등을 적은 문서가 발견돼 구속영장 발부로 이어졌다.
A씨는 서울의 유명 사립대 공대를 나와 무직 상태로 친척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마약 전과만 2개를 가지고 있던 A씨는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다.
◇ 팀워크·동물적 감각 결정적…"큰 사건 해결"이 형사 매력
강 경위는 이번 검거에 "운이 따랐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강 경위의 말처럼 여러 과정에서 운이 따라 검거가 빨라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수사 단계마다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실행하고 베테랑 형사다운 동물적 감각을 활용한 것이 범인 검거의 진짜 이유란 생각이 들었다.
강 경위는 팀워크도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강 경위는 "전례 없는 범죄인 만큼 한 명이라도 자기 일을 못하면 업무가 틀어진다"며 "'너 이거 해, 저거 해'라고 말할 필요없이 각자 할 일을 빠르게 해서 9시간 만에 범인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경위는 강력4팀 5명 중 김영환 팀장을 제외하곤 가장 고참이다. 팀원 대다수와 3년째 같이 호흡하고 있어 현장에서 서로 눈빛만 봐도 원하는 걸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김 팀장과 강 경위의 지휘 아래 작은 일에도 모든 팀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50대부터 30대까지 고른 연령 분포도 좋은 팀워크의 요인으로 느껴졌다.
강 경위는 2009년 입직해 14년간 경찰 생활을 하면서 기동대 2년을 제외하곤 모두 형사과에서만 근무한 베테랑 형사다. 가족 대부분이 공직에 있어 이를 천직으로 여겼는데 일반 공무원은 따분할 것이란 생각에 경찰을 택했다.
특히 대부분의 시간을 광진서 강력팀에서 근무하며 강력사범 추적에 몰두해 왔다. 10년간 연쇄 성폭행을 벌인 30대 발바리를 족적 추적으로 검거하는 등 굵직한 사건도 상당수 해결했다.
강 경위는 강력팀 형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범인을 잡는 손맛이 있다"며 "큰 사건을 해결했을 때 느끼는 희열과 성취감이 크다"고 웃었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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