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참패]"너무 비싼 티켓 끊었다"...다 쏟아붓고도 허탈하다 티도 못 내며 '속앓이' 중인 재계
대형 광고판, 랩핑 버스 운영 등 비용 부담
"폭넓은 네트워크, 기업에 도움 될 것" 입장 속
처음부터 가능성 없는 판에 기업들 동원 속내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씁쓸하네요."
주요 기업 관계자
부산이 2030 세계박람회 유치에서 예상과 달리 큰 표 차이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참패한 29일 유치 활동에 적극 나섰던 재계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특히 주요 기업들 총수까지 세계 각국 관계자를 만나고 유치 활동에 상당한 비용까지 썼음에도 이런 결과를 맞았기 때문이다. 경제 단체·주요 기업 관계자들은 이날 세계 각국의 고위급 인사들을 접촉하면서 시장 정보와 사업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도 정부가 처음부터 유치 가능성이 높지 않았는데도 기업들의 역량을 쏟게 만든 것 아니냐며 속앓이하고 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민간유치위원회 출범 이후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은 18개월 동안 175개국 정상, 장관 등 고위급 인사 3,000여 명을 만났다. 회의만 1,645회 열었다. 이 중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주요 5대 그룹이 전체 유치 활동의 89.6%를 차지할 정도로 적극 움직였다. 부산 엑스포 유치위원회 민간 위원장인 최태원 SK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은 발목 부상에도 목발을 짚고 석달 동안 부상 투혼을 이어갔고 더 빨리 가기 위해 이코노미석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막판에 감기에 걸린 채 한 표를 호소했다.
공식적으론 "네트워크 확장한 효과도 있다"
유치 활동에 들어간 천문학적 비용도 모두 기업과 경제단체들이 감당했다. 대한상의는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을 위해 삼성, SK,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에 특별 회비를 걷었다. 10대 그룹에서 걷은 금액만 대략 3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개별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적지 않은 돈을 썼다. 삼성은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린 프랑스 파리 오페라 극장의 대형 옥외광고에 '2030 부산세계박람회' 로고를 선보였고, 파리 국제공항에서 14개의 광고판을 통해 부산엑스포를 알리는 마케팅 활동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는 아트 카, 엑스포 버스를 제작해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 미국, 인도 등 세계 주요 국가를 누볐다. CJ는 파리에서 K팝 콘서트를 열었고 주요 국제 행사가 열리는 곳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명소에서는 어김없이 리셉션 등 한국 기업들의 홍보 유치 활동이 펼쳐졌다.
그러나 막상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자마자 재계에선 '아쉬운 결과지만, 얻은 성과도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유치 활동은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들과 만남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유치 활동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도 "아쉽지만 유치 활동이 허공으로 날아간 건 아니다"라며 "그 과정에서 여러 국가들과 새 비즈니스 협력 기회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영 계획 세울 시기에 엑스포 유치 전념했는데...
하지만 기회비용이 컸다는 게 기업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특히 경기 침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중장기 경영 계획을 서둘러 짜야 하는 시점이었지만 총수를 비롯한 기업의 모든 역량은 엑스포 유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가성비로 보자면 너무 비싼 티켓을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많은 출장비를 대고 총수나 CEO들이 꼭 가야 하나 싶은 곳도 많았다"면서도 "굳이 의미를 찾자면 그때 만난 장관이나 총리와 연락망을 갖추면 나중에 사기꾼은 피할 수 있고 그 나라에서 사업을 할 때 정부에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점 정도"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자칫 이번 엑스포 유치 실패의 원인으로 기업이 더 열심히 뛰지 않았다는 식으로 비난의 화살이 올지 모른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게다가 벌써부터 2035년 엑스포 재유치에 대한 얘기까지 나오면서 또다시 유치 활동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부담도 커진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에도 유치에 실패했을 경우 삼성이 모든 책임을 질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며 "정부가 막판까지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을 두고 민간 영역에 책임을 묻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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