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올인’ 분위기에… 정부도 기업도 객관적 보고 못해 오판
2030 엑스포 유치전은 부산의 조기 탈락으로 끝났지만, 한국은 대통령부터 정부 부처, 주요 기업까지 한 몸처럼 뛰는 과정에서 외교와 기업 활동의 무대를 넓히는 성과를 거뒀다. 윤석열 대통령도 29일 “고맙게도 우리 기업들이 함께하겠다고, 민관이 공동으로 하겠다고 참여해줬다”며 “지난 1년 반 동안 정말 아쉬움 없이 저희는 뛰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과 별개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사우디의 압승으로 귀결된 흐름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읽어내지 못한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보 수집과 판단 역량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대통령이 앞장선 ‘엑스포 올인’ 분위기 속에서 객관적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가다듬지 않으면 훗날 주요 국제 행사 유치전을 벌일 때에도 잘못된 판단으로 국력을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엑스포 개최지를 경선으로 정하기 시작한 1990년 이래, 3곳 이상의 도시가 도전했는데 1차 투표만으로 개최지가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우디는 투표 참가국 165국 가운데 119국(72.1%)의 지지를 얻어, 곧바로 유치를 확정 지었다. 120여 국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사우디의 공언과 외신의 보도에 거의 부합하는 결과였다. 반면 한국은 29표(17.6%)를 얻는 데 그쳤고, 이는 한국 정부와 재계의 판세 예측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2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투표일 직전까지 정부 내에선 1차 투표에서 70표 정도를 얻을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한국이 1차 투표에서 떨어진다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우디가 유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재계는 2차 투표에서 한두 표 차이로 승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사우디에 투표하겠다고 이미 약속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2차에서는 한국에 투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데 집중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세를 오판한 결과 잘못된 접근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부산의 유치 가능성이 높다고 오판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유치위원회를 민관 합동으로 개편하면서 정부가 유치전에 가세할 때만 해도 정부는 사우디의 유치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올해 초까지도 정부의 입장은 “유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한 총리를 비롯한 정부 최고위 관계자들이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182국 정상 대다수를 만날 정도로 유치전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희망적 사고가 냉정한 현실 인식을 대체했다. 개최지 결정 몇 달을 앞두고 일부 인사들은 ‘초근접’ ‘역전’ 등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이에 유치 교섭 일선에서 ‘아직 한국이 확보한 표가 훨씬 부족하다’는 보수적인 보고를 올렸는데, 정부 고위층에선 “왜 사기를 꺾는 보고를 올리느냐”는 질책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민간유치위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면서 판세를 오판했다. 재계에 따르면, 민간유치위는 1차 투표에서 사우디와 한국이 각각 90표, 70표 정도를 얻을 것으로 예상했고, 이탈리아 지지 10여 표, 부동표 10여 표가 2차 투표에서 상당 부분 한국으로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1차 투표에 승부를 결정 내겠다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사우디가 회원국들에게 ‘2차는 부산을 찍어도 상관없으니 1차에선 무조건 우리를 찍어 달라’면서 각종 물량 공세를 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과 주요 유치 위원들이 실적 경쟁을 벌이며 자신이 담당하는 국가의 입장을 다소 낙관적으로 보고하면서 우리 측 지지표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민관이 합심해 엑스포에 전력투구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비관적인 보고를 하기 쉽지 않아, 애매한 나라들은 우리 표라고 보고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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