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엔 삼겹살, 위스키엔?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김지호 기자 2023. 11. 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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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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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저녁 약속을 잡을 때 뭘 먹을지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지, 어떤 브랜드 소주를 마실지 미리 정하지 않습니다. 음식이 정해진 곳에서 판매하는 주류가 그날의 술이 되는 게 일반적이죠.

소주에서 마셨을 때 올라오는 씁쓸한 피니시는, 노릿하게 구워진 삼겹살 한 점이면 깔끔하게 정돈됩니다. /김지호 기자

소주는 음식과 궁합이 좋습니다. 이렇다 할 개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짠’과 함께 시원하게 고개를 꺾어 털어 넣으면 됩니다. 목 끝에서 올라오는 씁쓸한 피니시는 노릿하게 구워진 삼겹살 한 점이면 깔끔하게 정돈됩니다. 매콤한 안주도 문제없습니다. 얼큰한 찌개 하나면, 그날 저녁은 콧노래 부르면서 집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스키는 조금 다릅니다.

위스키는 그 자체로 이미 개성이 강합니다. 이 때문에 쉽사리 페어링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위스키의 본질은 맛과 향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다른 음식의 풍미가 위스키 맛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삼겹살 연기 자욱한 노포에서 위스키를 마신다면 어떨까요? 고기 몇 번 뒤집다 보면 발생하는 매캐한 연기에 위스키 향은 흔적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개성 강한 음식과 어울리긴 더 어렵습니다. 얼큰한 김치찌개나 마라탕에 위스키? 매운맛은 통각에서 옵니다. 입안이 얼얼하고 예민한 상태에서 알코올 도수 50%가 넘는 위스키가 혀에 닿는 순간, 진짜 ‘매운맛’을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위스키고 뭐고 물부터 찾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복에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잡고 위스키를 마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배가 든든해야 마음도 편하고 술 마실 때 부담이 없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페어링법은 위스키가 가진 고유의 맛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는 것입니다. 페어링은 순수하게 개인 취향의 영역이라 완벽한 조합은 없습니다. 적절한 조합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제가 집단 지성으로 얻어낸 결괏값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피트 위스키 : 석화, 회, 해산물 등 바다 먹거리

석화에 피트 위스키를 부어마시는 방법. /김지호 기자

석화의 진한 바다 향과 자연이 겹겹이 쌓아 올린 다채롭고 선선한 육질 층이 혀에 닿을 때, 피트 위스키 한 모금. 다 먹은 껍데기에 다시 한번 위스키를 붓고, 남아 있는 굴 즙과 함께 호록 마시는 순간 ‘마리아주(Marriage)’가 완성됩니다. 불어로 결혼을 뜻하는 마리아주는 술과 음식의 궁합을 말합니다. 개성이 다른 두 장르가 만나 서로가 가진 최상의 퍼포먼스를 끌어내는 것이지요. 피트의 스모크와 짠맛이 차갑고 탱글탱글한 생굴과 만나면, 장작불에 구운 듯한 훈제 굴 맛을 경험하실 수 있게 됩니다. 한편, 굴을 좋아하는 인물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일러섬에서 피트 위스키를 석화에 뿌려 마셨다고 합니다.

피트 특유의 풍미는 해산물의 찌릿하고 메탈릭한 비릿함을 말끔하게 잡아줘서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와 궁합이 좋습니다. 특히 기름이 잔뜩 오른 겨울철 대방어는 훌륭한 안주입니다. 두툼하게 썬 방어 한 점 입에 넣고 씹는 동안, 피트 위스키를 입술 사이로 살짝 흘려보내 주면 그 맛이 일품입니다.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입을 담백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줄 것입니다.

값비싼 위스키보다는 탈리스커 10년, 라프로익 10년, 아드벡 10년 등 엔트리급 제품을 추천합니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 : 하몽(Jamón), 말린 과일, 다크 초콜릿, 견과류, 치즈

셰리 위스키에서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노트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건포도 등 말린 과일이나, 초콜릿, 견과류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셰리의 기본적인 풍미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면 잘못될 일은 없습니다. 특히 셰리와 같은 산지에서 만들어지는 하몽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100% 도토리만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들어진 ‘베요타’ 등급 하몽. /김지호 기자

하몽은 소금에 절여 숙성한 돼지 뒷다리를 뜻하며, 등급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집니다. 그중에서 100% 도토리만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들어진 ‘베요타(Bellota)’ 등급이 특히 좋습니다. 얇게 카빙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눅진한 토마토 맛과 씹을수록 고소한 육질이 입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기름은 혀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집니다. 베요타 등급 특유의 도토리 향도 셰리 위스키와 조화롭습니다. 하몽은 이베리아반도 특유의 무덥고 건조한 기후 특색에 맞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주정 강화 와인인 셰리도 그 맥락이 비슷합니다. 하몽은 신선도가 중요해서, 당일 현장에서 직접 카빙된 하몽을 추천합니다.

흔히 치즈는 와인과 페어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스키와도 궁합이 괜찮습니다. 파르메산과 같이 딱딱한 치즈는 개성이 강한 싱글 몰트와 어울리고, 크림이나 브리 계열의 부드러운 치즈는 블렌디드 위스키와 함께 먹기 좋습니다. 훈연된 치즈도 같이 드셔 보시면 좋습니다.

무난한 셰리 캐스크 위스키로 글렌드로낙 12년, 부나하벤 12년, 글렌모렌지 라산타를 추천합니다. 도수가 너무 밍밍하다 싶으면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인 탐두 배치 스트렝스나, 아벨라워 아부나흐도 괜찮습니다.

◇버번 캐스크 위스키 : 크림 브륄레, 애플 크럼블, 치즈 케이크, 살라미, 햄, 프로슈토

각종 프로슈토와 살라미 햄 등. /김지호 기자

버번 캐스크 위스키는 화사하고 달콤한 과일 노트들이 밑바탕에 깔립니다. 그래서 생과일이나 애플 크럼블 계열의 달콤한 디저트류가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특히 애플 크럼블의 사과와 바닐라가 위스키의 풍미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또 크림 브륄레의 부드럽고 달콤한 질감도 함께 즐기기 좋습니다. 꾸덕꾸덕한 치즈케이크도 열대과일 맛 나는 위스키와 잘 어울립니다. ‘단짠’ 조합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살라미나, 햄, 프로슈토 조합도 버번 캐스크 특유의 눅진한 과일 맛과 조화롭습니다.

추천 위스키로는 로즈아일 12년, 글랜그란트 15년, 글랜카담 15년, 클라이넬리시 14년입니다.

◇버번 위스키 : 바비큐 요리, 양고기, 돼지 등갈비, 스테이크 등

버번은 남성스러운 이미지가 있습니다. 향도 강하고 맛도 폭발적입니다. “버번의 전투력은 도수에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최소 50%가 넘는 높은 도수의 버번들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버번은 바닐라, 체리, 견과류 등의 풍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간혹 알코올 향이 너무 강해서 아세톤 향으로 인식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버번에 어울리는 바비큐 요리. 사진은 우대 갈비를 숯불에 굽고 있는 모습. /김지호 기자

버번의 터프한 이미지만큼 페어링도 화끈합니다. 특히 숯불에 굽는 바비큐 요리와 궁합이 좋은 편입니다. 버번은 양고기 특유의 잡내를 잡아주고, 돼지 등갈비나 소고기 스테이크의 느끼함을 달콤하게 정리해 줍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버번위스키를 사용한 바비큐 소스들이 끊임없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너무 섬세한 요리는 강한 술맛에 묻힐 수가 있어 추천이 조심스럽습니다.

또 한 가지 궁극의 조합은 버번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입니다. 버번의 바닐라 맛과 실제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조합을 경험해보신 분들이라면 이미 고개를 끄덕이고 계실 겁니다. 올리브오일을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뿌리듯이 쓱 한 바퀴 돌려주면 끝입니다. 커피숍에서 왕왕 맛볼 수 있는 ‘아포가토’와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무난하게 바비큐와 잘 어울리는 버번으로 러셀 싱글 배럴, 와일드터키 12년, 와일드터키 레어브리드 정도를 추천합니다.

몰트 바에 가면 단골처럼 깔리는 안주가 플레인 크래커나 초콜릿, 견과류 등입니다. 바에서도 고심 끝에 설정한 기본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위스키 향을 해치지 않고, 맛도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페어링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성격이 다른 두 캐릭터가 만나, 상호 보완이나 상승 효과를 끌어내는 것입니다.

살면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더 많은데, 먹고 싶은 것까지 참아가며 술을 마실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위스키를 마실 예정이라면, 미리 배를 두둑이 채우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위스키는 오로지 물과 함께 즐기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고작 위스키 한 잔에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위스키가 숙성되는 수년간 겪었을 긴 세월을 한 번쯤 생각해보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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