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도심에도 노거수 살 수 있게 나무에 흙바닥 돌려주자

조종엽 문화부 차장 입력 2023. 11. 29. 23:42 수정 2023. 12. 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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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앞 전나무숲길엔 2006년 쓰러졌다는 육백 살 나무가 있다.

늙고 큰 나무가 빗물과 양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 한쪽, 가로세로 1m 정도밖에 안 되는 흙바닥이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흙을 두껍게 덮어 물이 땅속으로 침투하기 어려울수록 나무의 활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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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문화부 차장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앞 전나무숲길엔 2006년 쓰러졌다는 육백 살 나무가 있다. 텅 빈 속에 곰이 들어앉아 쉴 것 같은 크기다. 그 건너편 그루터기, 곰곰이 들여다보면 어지러워질 만큼 동심원이 많은 나이테 위에서 ‘멍 때리며’ 앉아 있으면 ‘사람의 삶은 참 짧다’ 싶다.

겨울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고요 속에서 늙고 키 큰 나무들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다람쥐가 뒤척이며 떨어뜨린 눈이 살포시 지면을 두드릴 때면, 나무의 물관이 지표 아래에서부터 한껏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럴 땐 거대하고 말 없는, 뿌리 박아 움직이지 않는 초연한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이 가슴을 채운다.

강원이 산이라면 제주는 숲이다. 거문오름 곶자왈에서 ‘돌은 낭(나무) 의지, 낭은 돌 의지’라는 제주 속담처럼 돌을 붙잡고 깊이 뿌리 내린 거목과, 그 위를 다시 콩짜개덩굴이 뒤덮은 모습을 보노라면 ‘고다마’(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숲의 정령)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다.

이런 기분은 이젠 도시를 떠나서야 느낄 수 있게 됐지만 전통시대엔 노거수(老巨樹)가 일상의 일부였다. 마을 어귀마다 느티나무가 정자나무로 서 있었고, 산기슭의 당산나무는 신령하게 여겼다. 그 시절 경이와 신비는 마치 밥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물론 산업화를 거치며 대부분 사라졌지만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도 오래된 마을엔 여전히 아름드리나무가 꽤 있다. 다만 거기서 놀라움은 좀 다른 것이다. ‘이런 채로도 생존할 수 있다니!’

건물과 도로가 장악한 공간의 한구석에서 노거수는 산다. 늙고 큰 나무가 빗물과 양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 한쪽, 가로세로 1m 정도밖에 안 되는 흙바닥이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마저도 길을 정비하면서 원래 지표보다 높게 흙을 덮은 탓에 뿌리엔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다.

노거수가 이런 환경에 처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처음으로 데이터로 밝혀졌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18일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노거수의 생육 환경과 나무의 활력에 관한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연구팀이 느티나무 노거수 25주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나무의 가지와 잎이 펼쳐진 넓이만큼의 지표, 지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자라는 노거수는 광합성을 잘하지 못했다. 지하에 장애물이 있으면 뿌리가 뻗지 못하고, 바닥을 콘크리트로 덮으면 그만큼 공기와 물, 영양분이 땅속으로 전해지지 못하는 탓이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흙을 두껍게 덮어 물이 땅속으로 침투하기 어려울수록 나무의 활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낮았다.

노거수 주위의 콘크리트를 뜯자. 뿌리가 숨을 쉴 수 있게, 인위적으로 덮은 흙은 걷어내자. 연구진은 전화 통화에서 “벤치를 놔두는 정도야 괜찮겠지만 적어도 수관(樹冠) 폭만큼은 바닥을 자연 상태로 둬야 노거수의 생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가운데는 600∼700년을 산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도 있다. 우리가 오래 살 나무를 천천히 죽이고 있는 셈이다. 말라 죽는 노거수와 함께 우리의 경이로움도 사라져 간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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