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졌잘싸’ 자찬에 시민들 “‘잘’ 없는데 다음이 있겠나”
실패 ‘전 정부 탓’엔 “어려움 딛고 승리해야 진짜 외교 실력”
“졌지만 잘 싸웠다? 지금 정부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정신승리 아니냐.”
부산의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29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대학원생 문모씨(27)는 “잼버리 파행이 생각났다”며 “정부가 실패 결과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도 이해하고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섣불리 설레발만 치는 것 같아 신뢰가 떨어진다”고 했다. 시민들은 잼버리 파행과 이태원 참사를 들며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가 “예견된 결과였다”고 말했다. ‘세일즈 외교’를 앞세워 엑스포 유치에 열을 올린 정부를 비판하는 반응도 쏟아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119표, 한국은 29표를 얻는 데 그쳤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엑스(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부산 29표’ ‘당연한 결과’ 등이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에 올랐다.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의 최종 프레젠테이션(PT)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시민들은 한국 정부의 발표 수준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PT 영상은 11년 전인 2012년 발매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아이돌의 응원 구호로 마무리됐다.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직장인 현모씨(33)는 “최종 PT를 보면서 2010년대로 회귀한 줄 알았다”며 “부산에 유치하려면 부산에 관한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K팝만 때려박은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국뽕’ 콘텐츠가 정상들에게 얼마나 먹히겠느냐”고 했다.
SNS에서도 발표의 그래픽 수준 등을 두고 “국방부 정훈교육용 영상인 줄 알았다” “중학생 수준의 발표 아니냐” “PT를 보면 오히려 투표를 안 하겠다”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은 “홍보랍시고 또 ‘강남스타일’, 또 <기생충>, 또 <오징어게임> 하는 오랜 관료주의가 문제”라고 했다.
박빙이라는 정부 예상과 달리 참패 수준의 결과가 나온 것을 두고 특히 비판이 거셌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조중수씨(68)는 “정부가 자신있게 될 것처럼 얘기해서 우리나라가 유치하리라 생각했다”며 “겸손하게 노력했어야 했는데 정부가 건방지게 우쭐댔다”고 했다.
직장인 이모씨(42)는 정부·여당이 ‘유치 과정도 외교적 성과’라고 자평한 것에 대해 “구체적인 유치안도 없었다”며 “정부가 ‘졌잘싸’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웃긴다. ‘졌잘싸’의 ‘잘’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산 엑스포 유치위원회 자문을 맡은 김이태 부산대 교수가 결과 발표 직후 개최 실패 원인으로 사우디의 ‘왕권 강화’를 꼽으며 “금전적 투표가 있었다”고 발언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유치 실패를 사우디의 오일머니와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정부 태도를 두고 “또 남 탓”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재미교포 A씨(70)는 사우디보다 유치전을 늦게 시작해 패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달리기에서 늦게 나간다고 맨날 꼴등 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것이 진짜 외교 실력인데 지금은 무작정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전 정부 탓을 한다”고 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이태원 참사 때는 피해자 탓, 잼버리 때는 지방정부 탓을 했는데 이번에도 일관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유치 실패의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기록해야 다음 경쟁에선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송이·김경민·최혜린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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