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공유” 내건 한국, “부채 해결” 물량공세 사우디에 완패
한국은 ‘벼 종자·쌀 증산’ 등 농업·정보기술 지원에 집중
대상국이 원하는 것과 차이…대중 관계 악화 영향도 지적
사우디아라비아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권을 따낸 비결로 ‘오일머니’의 힘이 꼽힌다. 하지만 한국은 단지 오일머니 때문에 사우디에 밀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개발국가 대상 외교가 대표적이다. 한국이 ‘발전 경험 공유’라는 공여국 중심 캠페인을 펼친 반면, 사우디는 ‘부채 해결’ 등 저개발국가들이 현재 원하는 내용에 공명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2030년 부산엑스포유치위원회에 자문한 김이태 부산대 관광컨벤션학과 교수는 28일(현지시간) 유치 실패 원인으로 오일머니와 금권 선거를 들었다. 그는 “사우디는 10조원 이상 투자를 저개발국가에다 (하고) 천문학적 개발 차관과 원조 기금을 주는 역할을 하면서 금전적 투표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치위는 한결같이 사우디의 전략을 오일머니를 앞세운 물량공세로 규정해왔다. 그러면서 ‘한국은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7월 카리브공동체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응·해양수산·식량안보·재생에너지 등 관심 분야에 대한 실질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분야별로 한국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기술 전수를 강화하겠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총리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첨단기술 전수 등을 언급했다.
한국의 발전 경험 전수는 농업·정보기술(IT) 등 기술 지원에 집중돼 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통일벼 모종을 담은 모판을 들고 서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를 방문했다. 한국은 아프리카의 쌀 증산을 위해 한국의 벼 종자와 농업기술을 전파하는 ‘K라이스벨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의 전략은 달랐다. 사우디는 지난 9일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아랍·아프리카 콘퍼런스에서 가나를 비롯한 부채 문제를 겪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에 5억3300만달러(약 687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지원과 더불어 부채 해소를 위한 무상 융자 등이 포함됐다. 사우디는 2020년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시절에도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채무 탕감과 이자 납부 유예를 주장했다. 기술이나 현물 지원을 넘어서 국제사회의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우디의 전략은 최근 극심해진 부채위기를 겪고 있는 저개발국가에 주효했다고 평가된다. 유엔과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의 올해 부채상환액은 지난해보다 35% 증가했다. 일부 국가는 자국민을 위한 보건비보다 선진국 금융기관에 내는 이자가 더 많다.
한국은 뒤늦게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며 저개발국과 접점을 늘렸지만 기후·보건 위기 등에서도 ‘금전적·기술적 지원’에 그치고 있다. 부채 해결 등이 대상국의 관심사이지만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 입장 차가 큰 문제 등에 대해선 발언을 회피해왔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발전 경험 역시 태평양·카리브해 도서국에 적용하기 쉽지 않은데도 ‘전수’ 또는 ‘공유’ 전략을 내세워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득표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도 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아프리카에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을, 아프리카 섬나라쯤으로 취급하는 현재의 외교정책으로 국제적 관계를 풀 수 없다”고 적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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