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멋쟁이 겨울 신사

기자 2023. 11. 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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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생긴 신화를 들려줄까? 시베리아 나나이족 신화엔 원래 하늘에 태양이 3개가 있었대. 얼마나 뜨거웠겠어. 동물들이 불타 죽자 배에 돌을 집어넣어 물속으로 가라앉게 했대. 물고기가 그래서 생긴 것. 동쪽에 사는 한 용맹한 장수가 있었는데, 아홉 개 골짜기를 넘어 동트는 장소에 도착. 두 개의 해를 화살로 떨어뜨린 뒤에야 첫눈과 함께 겨울이 찾아왔대.

한번은 눈 쌓인 몽골 하고도 강물이 땡땡 얼어붙은 ‘홉스굴’을 갔었다. 소똥을 모아 난롯불을 지피고 게르에 틀어박혀 말젖술을 마셨지. 대지와 물의 주인 ‘에투겡’에게 감사를 드리래서 한잔을 휙 흩뿌렸어. 에투겡은 ‘어머니의 배’라는 뜻. 홉스굴 사람들은 여성의 자궁을 ‘우테게’라 해. 또 흙벽으로 지은 가축우리와 유목지를 ‘어터그’라 부르는데 같은 어원이야. 여자무당은 ‘오드강’, 만년설이 내린 설산은 ‘오트공 텡게르’라 부른다. 우주 자궁에서 잉태한 존재들. 날씨가 추우면 돌아가신 엄마의 따뜻한 품이 아쉽고 그리운 법.

추위가 매서울 때면 엄마가 실로 떠주신 털장갑이며 털목도리, 엄마가 끓여주신 따뜻한 된장국 그런 게 생각나.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었다. 어디 공연장에 초대 손님으로 방문. 하필 가수 윤도현씨의 멋진 찬조 공연이 끝난 뒤 바로 내 무대. 분위기를 살리라는 건가 죽이라는 소린가. 입으로 사는 ‘말쟁이 목사’이기도 한지라 중간은 했다만. 친구가 그러덩만. 옷을 좀 두툼하게 입지 추워 보이더라고. 멋쟁이 겨울 신사가 목도리 한 장이면 되었지 뭔 소리! 해놓고선, 이를 으드드. 어머니 계실 땐 눈도 안 보이게 목도리를 친친, 옷도 내복까지 입어야 ‘칭찬’을 받았다. “멋부리다 얼어 죽는당게. 뙤(잔디) 덮고 자픈가? 죽더라도 새봄은 보고 죽어야재.”

그러나 오늘도 나는 목도리 달랑, 내복은 무슨 내복.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세간의 화제인 영화 속 군가를 따라 부르며 출타해. 악으로 깡으로, 멋쟁이는 날마다 전쟁이렷다.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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