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있을 때 잘해

기자 입력 2023. 11. 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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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에 가을이 오면 낙엽과 씨름하는 강아지들이 종종 보입니다. 우리 나비도 낙엽 속에 코를 파묻고 온 사방을 밀고 다닙니다. 코에 붙은 낙엽을 떼어 내느라 고개를 휘저었다가, 떨어지는 낙엽에 소스라쳐 숨었다가, 짖었다가, 급할 것 없는 일에 혼자 바쁩니다. 한동안은 무심코 지나쳤는데, 문득 낙엽 밟히는 소리가 예전과 다름을 알아챈 것은 얼마 전입니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낙엽이 드물기도 하고, 노란색이어야 할 은행잎도, 붉어야 할 단풍잎도, 여름철 초록을 지닌 채 떨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지, 글들을 뒤져 보았더니, 신기해하고 말 것이 아니더군요. 무지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초록색 낙엽’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이었습니다. 올해 서울의 11월 기온이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가을이 아닌 초여름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11월 중순에는 갑자기 영하의 맹추위가 몰아쳤지요. 단풍은 서늘한 가을날에 맑은 날씨가 이어져 일조량이 높을 때 물드는 것인데, 올해 가을은 유난히 추웠다 더웠다 하며, 비가 자주 내렸기 때문에 단풍이 미처 물들지 못했고, 초록 낙엽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입니다. 나무는 겨울을 준비해낼 시간이 없었고, 이는 기후위기가 눈앞에 닥쳤음을 보여줍니다. 이대로 가면, 예년과 같은 단풍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개의 갯과 동물들은 1년에 두 번 털갈이를 하지만, 우리 나비는 1년에 네 번입니다. 가을이 오면, 해가 짧아지고, 나비는 겨울날 채비로 두꺼운 털을 내기 위한 털갈이를 합니다. 실컷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나섰더니, 집은 절절 끓어 덥습니다. 하는 수 없이, 멋진 겨울 털을 겨우내 뽑아내야 합니다. 여름엔 반대입니다. 애써 여름털 채비를 마치고 나면 집은 되레 춥습니다. 나비의 겨울 털이란 게 벗어서 옷장에 넣어둔 것도 아니기에, 억울하지만 또 한 번 털갈이를 시작합니다. 나비와 살면서 털이 많이 빠진다고 구박하기 일쑤인데, 생각해보면 그 또한 인간의 간섭 때문이니 문득 미안합니다.

사람의 경우, 봄·가을 환절기가 되면 감기 등 호흡기 질환자가 많지만, 동물병원은 다릅니다. 외려 한여름, 한겨울에 비슷한 증상의 호소가 많습니다. 사람이 실내 온도를 적극적으로 높이려 하거나, 낮추려 하는 시기야말로 사람과 함께 실내에 사는 개, 고양이의 진짜 환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죄로 동물들은 아프고, 사람을 가까이 한 죄로 가로수들은 낙엽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시절입니다.

이제까지의 행태를 보자면, 인류는 손대는 것마다 오염시키고, 생태자원을 독점하여, 주위에 피해만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딛고 사는 지구와의 공존마저 위태롭습니다. 환경단체 세계생태발자국네트워크에 따르면 현재의 인류가 소비하는 자원을 충당하는데 1.7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미국인처럼 자원을 쓰려면 5.1개의 지구, 한국인처럼 자원을 쓰려면 지구 4.0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자연이 인류와의 공존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 방식은 우리의 상상보다 가혹할 것입니다. ‘있을 때 잘하자’ ‘웃을 때 잘하자’는 표어가 생각나는데, 표현이 조금 저렴한가요? 지구가 모르게, 슬슬 눈치를 봐서 은행잎은 다시 노랗게, 단풍잎은 다시 빨갛게, 슬쩍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마음입니다.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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