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용산참사는 전문 시위꾼들의 도심테러?

이준범 입력 2023. 11. 2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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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기자 ▶

최근 국민의힘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김석기 의원은 용산참사를 '용산 화재 사고'로 지칭하며 '도심 테러'였다고 말했습니다.

[김석기/국민의힘 최고위원 (지난 27일)] "무고한 시민과 차량을 향해 무차별로 화염병, 염산병, 돌을 투척한 도심 테러와 같은 심각한 불법 폭력 시위였습니다."

김 의원은 용산참사 당시 지휘 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이었는데요.

김 의원의 주장이 맞는지, 팩트체크 <알고보니>에서 따져봤습니다.

◀ 리포트 ▶

용산참사는 지난 2009년 1월, 용산재개발 구역 철거민 농성장에서 벌어졌습니다.

농성이 시작된 지 불과 25시간 만에 경찰이 특공대를 투입해 대규모 진압작전을 벌이던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검찰은 철거민들이 화염병 2백 개와 염산병 40여 개, 골프공과 벽돌 수백 개를 던졌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당시 경찰의 진압작전을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 기자 ▶

하지만 참사 이후 이뤄진 재조사에서는 이런 판단과 다른 정황들이 잇따라 확인됩니다.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의 보고서입니다.

참사 전날 오전에 화염병 투척 등이 있었지만 정오 무렵부터 중단됐고, 오후 1시부터는 주변 도로도 정상적으로 소통됐다고 돼 있습니다.

주변 상가 13곳도 계속 영업 중이었습니다.

참사 당시 현장은 경찰특공대가 투입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다음해 검찰 과거사위는 참사 전날 오전 투척된 화염병과 벽돌조차 일반 시민이 통행하는 도로 쪽으로는 던지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마저도 오후부터는 줄어들어 위해 우려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참사 당일, 철거민 시위로 시민들이 몇 명이나 다쳤냐는 취재진 질문에 경찰은 한 명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김수정/당시 서울경찰청 차장 (2009년 1월)] "일반 시민 부상자는 없고 저희 대원들이 쇠구슬에 맞아서 가슴에 타박상을…"

하지만 당시 경찰 지휘부는 이같은 현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특공대를 투입하며 조기 진압에 나섰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0년, "경찰이 철거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잉조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참사의 경찰 지휘 책임 당사자가 이런 사실에 눈감은 채 참사를 도심테러로 규정하는 건 책임있는 자세라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알고보니 이준범입니다.

영상편집: 남은주 / 자료조사 : 도윤선, 김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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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편집: 남은주

이준범 기자(ljoonb@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48463_361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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