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동형 비례제 확대, 이재명 결단이 절박하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다. 국회는 내각제라면 벌써 해산했어야 할 수준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와 대통령의 무차별적 거부권이 충돌한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법 등 쟁점 법안은 예외 없이 민주당 단독 처리됐다. 21대 국회는 민주당에 의한, 민주당을 위한, 민주당의 ‘의원 총회’를 방불케 한다. 우리의 정당정치, 의회정치, 대통령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정말 국민 ‘혈압’을 치솟게 한다. 시정에는 정치를 멀리하면 민주주의가 병들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내 가슴이 병든다는 말이 돌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은밀한 파괴’(subversion by stealth)의 길로 가는 중심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자리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정치 탄압에 맞선 ‘순교자’ 이미지로 포장해 지지층을 결집하여 내년 4월 총선 승리로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뒤집겠다는 게 그의 복안인 듯 보인다. 이재명 정치는 이견과 갈등을 협상 스킬로 풀어가는 리더십이 아니라, 지지층의 정서와 감정을 자극하는 프로파간다에 익숙한 ‘데마고그’ 색조가 짙다. 검찰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재명의 민주당은 탄핵, 묻지마식 독설로 정권 퇴진 등 극단적 대결 정치에 방점을 둔다. 이에 윤 정권은 사정권력을 동원,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극대화하려 한다. 민주당의 입법 비협조에 대통령은 국회를 우회하는 ‘시행령’ 정치로 받아치며 일방적 국정 운영으로 권위주의 통치를 불사한다. 이게 한국 정치 양극화의 파괴적 다이내믹스다.
정치 양극화는 여야 협상-타협 정치의 실종으로 입법·국정을 교착시키고, 입법 능력 퇴조라는 국회의 레임덕을 초래한다. 나아가 정치의 검찰·사법화와 검찰·사법의 정치화를 낳으며, 경제 양극화와 사회 양극화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따라서 이 악순환 사이클을 단절하고 한국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길은 탈(脫)양극화 프로젝트다. 그 열쇠는 ‘표심 그대로 의석 배분’이라는 연동형 비례제 확대다. 정치 양극화는 본질적으로 양당 독점 체제를 고착화하는 불비례적 승자독식 선거제에서 발원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며 비례제 확대를 수용하면 대통령 권력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했다. 비례제 확대와 정권을 맞바꾸는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선거제에 대한 노무현의 절절한 문제의식이다.
적잖은 국민이 이재명을 향한 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변방의 정치 아웃사이더로 출발한 이재명이야말로 정치교체의 적임자라는 평가가 있다. 차별과 불평등에 눈물 흘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한숨과 울분에 반응하고, 배제되고 소외된 국민 목소리를 포용할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재명은 ‘민심에 비례해 권력을 나누는’ 연동형 비례제를 매개고리로 야권 선거연합을 형성, ‘변혁적 탈양극화’ 전략에 나서야 한다. 거대 양당 권력독식을 허용할 ‘병립형 선거제’로 회귀할 건가, 아니면 다당제-연합정치를 유인할 연동형 비례제로 갈 건가, 양자택일로 국민의힘을 압박하라.
무릇 민주주의 수준은 선거제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한다. 선거제가 고(高)비례성을 투영할 수 없다면, 어떤 정치 혁신안도 본말이 전도돼 정치판을 바꿀 수 없다는 건 장황한 췌언(贅言)을 필요치 않는다. 불비례적 승자독식 선거제가 유지되는 한, 현미경적 검증 및 상향식 공천 시스템을 통해 국회의원을 ‘천하의 인걸’들로 바꿔봐야 ‘그놈이 그놈’이라는 게 일반 국민의 정서다. 국회의원은 총선 때마다 절반 가까이 ‘물갈이’돼 왔다. 그런데도 정당·국회의 작태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극도의 정치 양극화다. 그렇다면 이젠 ‘물통’을 바꿔야 할 수순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재건축에 ‘제도’는 필요조건이고, ‘사람’은 충분조건이다. 이재명의 연동형 비례제 확대 결단을 요구한 까닭이다.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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